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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영화와 음악

주먹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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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밑바닥에서 어금니 꽉 물고 세상을 향해 한 방 날려보자.

단 4편의 영화로(인터넷 개봉작인 <다찌마와 리>를 제외한) 류승완 감독은 어느덧 한국의 중견 감독이 되었다. 네 개의 단편을 엮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대한민국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73년생의 젊은 감독은 내 놓는 영화마다 그 독특한 영상미로 관객을 자극한다.

류승완 감독의 4번째 극장용 영화인 <주먹이 운다>는 두 명의 실존 인물을 적절히 혼합해 만든 영화다. 수많은 매스컴을 통해 이미 접한 바 있겠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두 남자가 복싱이라는 매개로 다시 일어서는 내용이다.

<주먹이 운다>는 중반까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두 남자의 절망을 보여준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에서 두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 여기서 감독이 영화를 만든 목적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포기라는 단어 대신 희망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두 남자.

그 희망이란 단어가 만나는 곳은 바로 프로복싱 신인왕전이다. 서로 만나본 적 없는 두 실패자들은 영화의 마지막에 사각의 링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서로의 아픔을 알 턱 없는 두 남자가 날리는 주먹에 관객은 눈물을 닦아낸다.

< 주먹이 운다>는 류승완 감독의 독특한 구성과 류승범, 최민식 두 배우의 신들린 듯한 연기, 거기에다 조용규 촬영감독의 테크닉이 완성된 걸작이다. 류승완 감독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교차해서 보여주며(류승완 감독의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도 옴니버스 스타일의 영화다.) 영화를 TV 다큐멘터리처럼 엮어나간다. TV 다큐멘터리와 같은 형식의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꼬리표인 ‘리얼리티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근래에 보기 드문 멋진 복싱 장면을 보여준다.

<주먹이 운다>는 노출이 맞지 않거나 카메라가 흔들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두 배우의 연기에 관객이 빠져들 수 있게 만든다. 최민식의 칼 같은 치밀한 연기(최민식은 모 토크쇼에서 자신은 연기 기술을 익혀 연기를 하는 것이라 이야기 한 바 있다)와 류승범의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쏟아내는 자연스런 즉흥연기를 감독은 이질감 없이 담아냈다. 그러기에 두 인물의 대치적인 모습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영화는 경기의 승자와 패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감독은 어떻게 이들이 다시 일어서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 하는가에 중점을 두기로 한 듯 하다. 그리고 그 의중은 마지막 결승전 장면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에 승자를 보여주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미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신선한 소재의 스토리는 아니지만 삶에 힘들어 하는 현대인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는 이야기다. 감독 역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보여주는 상태와 상환의 웃음 속에서 관객들의 희망을 찾아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적 당히 웃기고 적당히 울리면서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하고 있다. 이제 막 4번째 영화를 찍어낸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류승완 감독은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류승완감독은 자신을 상업영화의 감독이라고 칭하고 있다. 상업영화 감독이라면 영화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주먹이 운다>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다.

시원하게 웃고, 울면서 가슴속의 절망에 훅 한방 날려버리자. 이 영화는 그런 영화이다.
작품성을 따지며 영화를 보고 싶다면 다른 거장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