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매번 듣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저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 해보려 한다. 그러니까 이 글 안에서는 소설과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약간의 스포일러는 피할 수 없다. 그게 맘에 들지 않으면 안 보면 그만.
우선 눈으로 보이는 것부터 이야기할까? 언제나 그랬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 되겠다.
일단 영화는 처음에 조금 역겹다. 평소 고어물이나 탕수육과 영화를 즐겨 보긴 했지만 신생아가 시장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은 생각보다 역겨웠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이러한 역겨움은 상당히 많이 사라진다.
특히, 이 영화는 어느 에로영화보다도 많은 나체가 등장한다. 물론 아리따운 여성의 그것이다. 하지만, 영화 내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기억나는 것은 한번? 그것도 아주 잠깐. 수많은 사람이 뒤엉켜 난교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도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오히려 역겹다고나 할까? 여성의 나체가 이렇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다니 참 오묘한 영화다.
내가 그런 것에 좀 무딘 사람 아니냐고? 나의 H는 언제나 HENTAI다. 그런 것에 무딜리가...
18세기 프랑스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아마 이랬을 것이다.’라는 느낌은 살짝 받았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복장, 배경 등은 괜찮았다. 최 하층민부터 상층부의 생활까지 표현이 잘된 느낌. 기본적으로 제라드 드빠리유가 나왔던 ‘비독’의 배경과 비슷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분위기가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몇몇 설정에는 유치함이 느껴지기고 한다. 특히, 더스틴 호프만이 주인공의 향수를 처음 접했을 때 장면은 할 말을 잊게 한다. 프랑스 영화가 원래 좀 유치한 장면을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요건 좀 심했다. 꼭 눈동자에 기름 한 방울 떨어져 있는 듯했다. 하긴 향기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하기는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으리라 생각되긴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뭐야!!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더스틴 호프만은 짧은 출연의 조연을 맡았지만 성실히 연기에 임했다. 역시 거장은 역할이 크기와 상관없이 영화에 녹아드는 힘이 대단하다. 다만, 너무 작은 비중이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주연배우인 벤 위쇼 역시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주인공 그루누이의 편집증에 걸린 듯한 모습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 특히, 후반 부의 모습은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가 그루누이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리포터의 스네이프 교수 알란 릭맨은 그 특유의 멋진 목소리가 매우 돋보였다. 하지만, 로빈 훗에서 보여줬던 그 느낌을 다시금 받은 것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러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에도 영화 자체는 ‘별로’였다. 무척 흥미진진하고 멋진 이야기였음에도 흥미진진하고 멋지게 보지 못했다. 그루누이를 연기한 벤 위쇼의 연기가 수준급이었음에도 그의 편집광적인 행동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져 악의도 연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을 노렸다면 성공한 것일테지만 덕분에 영화는 양념이 하나도 되지 않은 곰국처럼 매우 싱겁다.
스릴러라고 치부하기에도 매우 약하다. 등장인물들의 갈등도 깃털만큼 가볍고 두뇌 싸움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죽이고 죽는다. 영화가 끝나면 약간 기분 나쁘고 허무하다. 그리고 왜? 라는 질문 수백 가지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건 소설을 읽으면서 해결해야 하는 건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소설을 읽었으며 어느 정도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향기라는 것을 영상으로 옮기기엔 아직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과 함께 감독의 연출력 때문에 명연기들이 묻혀버린 것에 아쉬움이 컸다.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아쉬움이 가득했던 영화다.
차라리 러닝타임을 좀 더 늘리고 스릴러 적 요소를 좀 더 가미하던가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극대화했다면 어땠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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