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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영화와 음악

셔터소리가 아름다운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내게 재미있는 일본 영화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링'을 기본으로 하는 공포영화. 서양에는 이미 슬래셔 무비도 식상해 졌고 뱀파이어 영화는 액션 및 SF영화로 둔갑해 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등골을 오싹하게 하고 있으며 피 한방울 보이지 않아도 소름을 쫙 끼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독사같은 것들.)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로맨스 영화(라고 적고 멜로 영화라고 주로 말한다). 이쪽은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족족 만족감을 안겨 주고 있다. 한국 영화의 억지스러움이나 서양 영화의 와 닿지 않는 문화와 달리 일본 영화는 나름대로 따스한 눈물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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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두 주인공 시즈루와 마코토)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일본 로맨스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참 유행을 지난 영화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보고 있는데 '도쿄타워'나 '냉정과 열정사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이 이에 속한다(그래도 유행을 타지 않는 장르라 다행). 지난 주말 또 하나의 로맨스 영화를 봤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이 영화도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원작 제목이 무려 '연애사진, 또 하나의 이야기'다. 작가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작가 '이치카와 타쿠지'(흠. 주인공 여자 죽이면서도 항상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이상한 능력을 소유한 작가).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필름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안경 잡지에선 영화 속 주인공을 대변해 주는 물건으로 시즈루의 안경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사실 그 안경잡지 덕에 이 영화를 처음 알게됐다), 난 의견이 다르다. 물론 최근 사진에 대해 관심이 부쩍 높아져서 일지도 모르겠지만(역시 욕먹지 않기 위해 깔아두는 센스!) 두 사람이 연신 눌러대는 필름 카메라의 아나로그 셔터 소리가 영화가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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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루의 카메라 AE-1)

두 주인공 시즈루와 마코토의 첫 만남도 바로 카메라(확실치는 않지만 CANON F-1인 듯)가 귀한 역할을 한다.

약간은 엉뚱한 시즈루의 모습을 평소 사진에 취미가 있는 마코토가 찰칵 소리를 내며 필름에 담는다(아 아나로크 셔터 소리의 정겨움이여). 후에 이 사진은 영화 내내 시즈루의 사랑을 대변해 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배운 사진실력으로 2년 만에 개인전을 펼치는 시즈루.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즈루의 사진 한장 한장은 그녀가 가슴에 담고 있던 사랑을 고스란히 표현해 준다. 사랑하는 이에게 그토록 보여주고 싶어했던 성숙한 그녀의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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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때문에 영화는 움직임(영상) 속의 멈춰짐(사진)을 통해 진행형과 과거형을 혼합하고 있다. 때로는 영상이 과거가 되고 사진이 진행형이 되기도 한다. 시즈루의 편지를 받고 뉴욕으로 달려가는 마코토는 과거(추억)가 되고 시즈루의 생일 선물로 찍은 둘만의 키스 사진은 진행형이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내내 평범하며 어딘가 부족한 대학생. 휘귀병 때문에 성장 호르몬의 억제로 아직은 덜 자랐고 밥 대신 도넛 비스킷을 먹고 사는 4차원 소녀 시즈루. 몸에서 약 냄새가 날 거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약간은 어리버리 하지만 사진과 동남아 필 나는 미녀를 사랑 하는 마코토. 그리고 그 동남아 필 나는 미녀 미유키. 이 세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상한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영화를 진행시켜 나간다(왠지 남자 주인공이 어리버리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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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안한 삼각관계의 세 사람. 모두 맘에 드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 삼각관계는 질투나 오해 등으로 짜증나게 하지 않고 내내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런 매력이 바로 일본 로맨스 영화의 장점이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긴장감은 부족하지만 부드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편하게 영화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는 눈물 한방울 주륵 흘릴 수 있기 때문이려나(이 영화에는 미워할 악역이 하나도 없다).

또한, 영화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해바라기 밭의 아름다움을 영화 가득 뽐냈다면 이 영화는 주인공의 캠퍼스 뒷 편에 숨겨져 있는 숲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영화 초반과 후미에 등장하는 뉴욕의 모습도 '냉정과 열정사이'의 이태리만큼이나 수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본 제작진들 이런 영상미를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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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키스에 조금은 사랑이 있었을까?)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셔터 소리와 화려한 듯 수수한 배경. 그리고 내면 연기가 훌륭한 젊은 배우들. '사랑하면 죽는 병'이 보여주는 아련함과 그리움은 오랫만에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 버렸다.

영화 중반 잘 못된 방법으로 CANON AE-1을 잡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던 시즈루의 모습과 셔터 소리가 내내 잊혀지지 않는 영화다(이제는 태양의 눈물을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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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죽는 병에 걸렸던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