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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기자 명함 내세운

오늘은 최초 우주왕복선 '25번째 생일'

이 동네에선 왜 이런 기사가 안 읽힐까?

정말 재미없는 기사인가? 후후..

자료 찾고 기사 쓰느라 꽤 고생했는데.. 안타까우이...

 

오늘은 최초 우주왕복선 '25번째 생일'
'콜롬비아호' 첫 발사 후 총 28회 비행, 공중폭파까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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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사진 NASA)
 ⓒ 2006 HelloDD.com
2006년 4월 12일은 최초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가 처음 발사 된지 25 주년이 되는 날이다. 본격적으로 우주공간을 실용화하는 문을 열어준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는 2006년 첫 우주인을 탄생시킬 예정인 한국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003년 아쉽게 공중 폭발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콜롬비아호. 인류 최초 우주왕복선의 역사를 돌아보며 한국 우주산업의 현 주소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비했다.[편집자 주]

1981년 4월 12일.

전 세계는 또 다시 TV앞에 모여 인류가 이룩한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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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왕복선의 구조(사진 NASA)
ⓒ2006 HelloDD.com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의 첫 발사. 인간을 태우고 우주로 떠난 우주선이 왕복선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콜롬비아호가 발사된 이후 첼린저,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엔데버 등 계속적인 우주왕복선이 개발됐고 인류는 지구 밖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넘어 여행까지 가능해 지는 시대에 다다르게 됐다.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당시까지 인간이 탑승한 우주선은 모두 우주를 한번 다녀오면 패기 해야 하는 일회용이었다. 때문에 많은 경비가 소요됐고 미국은 이에 따른 국내외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를 중심으로 개발된 것이 스페이스 셔틀 시스템, 즉 우주왕복선이다.

우주왕복선은 3가지가 하나로 조합된 우주선이다. 승무원이 탑승하게 되는 오비터(Orbiter)·외부연료탱크·고체연료 로켓부스터 중 오비터와 고체연료 로켓부스터는 재사용하고, 외부연료탱크만 한번 사용 후 폐기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바로 STS(Space Transporation System)다. 컬럼비아호는 이러한 시스템을 적용한 최초의 우주선인 것이다.

콜롬비아호의 전체 길이는 56.1 m며 그 중 오비터는 전장 37.2 m, 전체 폭은 23.8 m로 최대 7명의 승무원이 탈 수 있는 컬럼비아호는 4번의 시험비행을 거쳐 총 28번의 비행 기록을 세웠다.

화려했던 '비행 일지'

콜롬비아호의 첫 비행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1981년 4월 12일 발사돼 54시간 20분간 이뤄졌다.

발사지는 케네디 우주센터(현재는 케이프 커내버럴로 불린다). 승무원은 J.W.영(기장)과 R.L.크리펜(조종사)이었으며 지구를 36회전했다.

콜롬비아호의 첫 임무는 긴급 기본시스템의 테스트와 그 밖의 간단한 시험이었으며 모든 비행이 끝난 후 화이트샌드 미사일 발사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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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발사 당시 케네디 우주센터의 콜롬비아호 모습(사진 NASA)
ⓒ2006 HelloDD.com
1차 비행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게 된 미국은 그해 11월 12일에 2차 비행을 실시한다.

총 57시간 13분에 걸친 비행을 이뤄낸 2차 비행은 J.H.앵글(기장)과 R.H.트룰리(조종사)가 탑승해 로봇팔 테스트 등의 시험을 거쳤다.
차 비행은 다음해인 1982년 3월 22일 이뤄졌다. 1, 2차 비행시간의 3배가 넘는 총 192시간 4분에 걸친 비행을 이뤄낸 승무원은 J.R.루스마(기장)와 C.G.플러톤(조종사)이었다.

이 비행에서 컬럼비아호는 로봇팔을 이용해 화물칸의 짐을 들어올리는 성과를 거뒀으며 태양열에 대한 셔틀의 반응테스트 등을 시험했다.

마지막 시험비행이었던 제4차 비행은 같은 해 6월 27일부터 168시간 10분에 걸쳐 진행됐다. 승무원은 T.K.매팅리 2세(기장)와 H.W.하츠필드(조종사)가 탑승했다.

긴 시간 시험 비행을 마친 콜롬비아호는 기존의 화이트샌드 미사일 발사장이 아닌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이는 화이트샌드 미사일 발사장이 모래땅이었던 것에 반해 단단한 활주로인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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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호의 마지막 승무원들(사진 NASA)
ⓒ2006 HelloDD.com
특히 4차 비행의 승무원들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레이건의 영접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든 시험 비행을 마치고 처음으로 실시된 실용 비행은 4차 비행의 약 5개월 후인 11월 11일에 이뤄졌다.

5차 비행의 승무원은 기존 2명에서 V.D.브랜드(기장), R.F.오버마이어(조종사)의 승무원과 J.P.앨런(물리학자)과 W.B.레노어(전기기사)의 전문가 2명이 더 탑승함으로 총 4명으로 늘어났다.

첫 실용비행이었던 5차 비행에서 콜롬비아호는 자유 비상하는 인공위성을 스페이스 셔틀에서 궤도에 쏘아 올리는 일을 처음으로 성공 시켰다. 이때 쏘아올린 인공위성은 SBS-3와 캐나다의 애닉(Anik) C(Telesat)이었다.
이 후에도 콜롬비아호는 상업적, 군사적, 과학적 목적을 가지고 총 27회의 비행을 성공했다.

그리고 2003년 2월 1일 28번째 비행에서 불운을 맞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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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폭파 당시 장면
ⓒ2006 HelloDD.com
총 16일간의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콜롬비아호는 대기권을 돌파한 후 공중 폭파되면서 7명의 승무원과 함께 재가 되는 최후를 맞게된다.

지금도 NASA의 홈페이지(www.nasa. gov/columbia/home/index.html)를 가보면 당시 탑승했던 7명의 승무원을 추모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인사업단 최기혁 박사는 "콜롬비아호는 항공산업과 우주산업의 융합으로 이뤄진 작품이다"며 "인류가 우주 공간을 본격적으로 실용적으로 활용하도록 만든 첫 비행체라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콜롬비아호를 시작으로 인류를 조금 더 지구 밖으로 이끌어 갔던 우주왕복선은 2010년 우주정거장이 완성되면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대덕넷 김상현 기자>nakedoll@hellodd.com
2006년 0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