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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기자 명함 내세운

KAIST 철새 서식지를 가다...쇠백로, 황로, 해오라기와 단독 인터뷰

결정적으로 아래 글은 엄청난 수정 작업을 거친 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사화 됐다.

아래 글은 초고라고 할까? 처음 맘 내키는데로 작성한 내용이다.

하지만 너무 기자의 느낌이 감해졌고, 그로인해 신문 기사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대대적 수술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아래 글이 더 아기자기하니 재미있어 지우지 않고 블로그에 올려놓는다.


최종 수정된 기사는http://www.hellodd.com/Kr/DD_News/Article_View.asp?Mark=15895 에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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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여름 철새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들의 모습까지 손에 닿을 거리에 놓여 있었다.

조선시대 문호 이직이 겉 희고 속 검은 동물로 표현했던 백로.

그 백로를 포함한 여름 철새들의 서식지가 KAIST(한국과학기술원)안에 자리 잡고 있다.

KAIST 학생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로 각광받고 있는 어은동산. 약 3만평 가량의 이 작은 동산에 수백 마리의 여름 철새들이 살고 있다.

어은동산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여기 저기 떨어져있는 조류의 배설물을 만날 수 있었다. 푸드득하고 날갯짓하는 소리를 듣고 쳐다보니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텃새 까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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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주변에 진을 친 까치.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우측에서 뜻 모를 새소리가 잔뜩 귀를 자극한다. 모습은 볼 수 없고 소리를 따라 우거진 수풀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동산 안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지럽게 펼쳐있는 듯 느껴지면서도 나름대로 질서를 갖춘 수많은 침엽수들에서 자연스럽게 신비감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팔을 나뭇가지에 긁히며 안으로 들어가니 발밑이 온통 페인트를 뿌려 놓은 듯 하얗게 변해있었다. 자세히 보니 새들의 배설물이 쌓여 만들어진 광경이었다.

또다시 푸드득 소리에 놀라 앞을 보니 거기에 쇠백로와 중대백로 등의 서식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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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배설물로 온통 하얀칠이 되어 있던 나뭇잎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전나무 여기 저기 앉아 있던 어른 쇠백로와 중대백로들이었다. 얼핏 봐도 그 수가 족히 2~30마리는 돼 보였다.

사람의 첫 방문이어서인지 백로 들은 금새 혼비백산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몇 마리는 끝까지 근처에 남아있었는데 아마 새끼들이 가까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나무 가지에는 수많은 둥지들이 있었고 그 둥지 안에는 갓 태어난 듯한 새끼들이 기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방문객에 놀라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둥지 주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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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의 알 껍질
둥지가 있는 나무 주변에는 새끼들 것으로 짐작되는 알 껍질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매추리알 만한 크기의 알 껍질은 온통 하얀색이었는데 손을 대자 바스락 하며 부서졌다.

새 끼들이 있는 둥지 안쪽 다른 나무에는 어미 쇠백로가 꼼짝하지 않고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람의 방문으로 많은 새들이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 버렸음에도 겁에질린 표정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모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어미새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즈음 기자가 자신들을 해치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님을 눈치 챘는지 다른 새들도 하나 둘 둥지 주변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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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백로들이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고 있다.
거기서 또 하나의 백로인 황로를 만났다. 황금왕관을 쓰고 황금 망토를 두른 듯 보이는 황로는 쇠백로와 또 다른 멋스러움을 보여줬다.

사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황로는 쇠백로에 비해 그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날에는 쇠백로 못지 않은 많은 수의 황로를 만날 수 있었다.

어은 동산에는 이들의 서식지가 곳곳에 분포돼 있었다. 기자가 서있던 자리에서 좌·우측을 둘러보니 여기 저기 쇠백로들이 잔뜩 앉아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황로도 모습을 들어 냈다.

다른 서식지들을 둘러보다 문득 처음 보는 조류를 만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해오라기였다. 눈에 마스카라를 한 듯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해오라기는 회색 깃을 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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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하지 않고 알을 품고 있는 중백로 어미
KAIST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어은동산에는 쇠백로, 중대백로, 황로, 검은댕기해오라기, 해오라기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검은댕기해오라기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어은동산의 여름철새는 가장 많았던 시기에는 800마리 정도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약 5년 전부터 부쩍 많은 수가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어은동산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작용했다.

일단 어은동산은 겉으로 보기엔 백로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다. 나무들이 나이가 적어 키가 크지 않고 가늘다.

이렇게 되면 바람에 쉽게 가지가 흔들려 둥지에서 새끼가 떨어지기 쉽고 이 때문에 철새들은 좀 더 크고 튼튼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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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라기의 아담한 자태
하 지만 어은동산은 산 중턱이 움푹 들어간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바람이 능선을 타고 서식지가 있는 지역에 영향을 주지 않고 그대로 산꼭대기로 넘어간다. 즉 움푹 들어간 지역의 나무에는 바람의 영향이 미치지 않게 되고 이 곳에 주로 둥지를 짓는 것이다.

조류학 전문가인 국립중앙과학관의 백운기 박사는 어은동산의 백로 서식지 구성에 대해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새들은 시끄러운 소음이나 사람의 접근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동물인데 KAIST 특성상 교내 학생들의 왕래가 적어 새들이 좀 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1992년 대전엑스포 당시 개발된 갑천이 10여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연생태계를 이뤄나가는 것도 이들 새들에게 큰 도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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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혹시 뱀구멍? 어은동산에 뱀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식에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기자에게 이 구멍은 호러 자체였다.
작은 물고기나 곤충들을 먹고 사는 새들에게 갑천의 회생은 큰 식당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백운기 박사는 이러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난 2002년 이 지역을 시 기념물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해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은동산의 철새 서식지 구성이 꼭 좋은 부분만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 은 새들이 모여 있어 소음이 심하며 배설물 인한 불쾌한 냄새들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강한 산성 성분의 변을 배출하고 나무 정상부위나 나뭇가지에 둥지를 짓기 때문에 토양이 산성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나무가 고사되는 비율도 높다.

하지만 백운기 박사는 "백로가 번식 한다 해도 단기간 내 나무가 죽는 경우는 없고 7~8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고 계속해서 여러 개체들이 집중적으로 한 나무를 사용할 경우에만 죽는 현상이 발생한다"라고 밝혔다.

KASIT 자체에서도 토양의 산성화를 막기위해 다량의 석회석을 바닥에 뿌리는 등 다방면에서 환경보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름이 지나가고 겨울이 되고 몇 몇 새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있을 정도로 철새들에게 최고의 안식처로 거듭나고 있는 어은동산.

아무리 소음과 악취가 심하다 해도 날로 삭막해가는 도심생활 속에서 병풍에서나 감상할 수 있던 백로를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혜를 쉽게 포기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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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병풍을 연상케하는 중백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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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눈빛의 새끼 백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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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로의 늠름한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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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사주경계라도 하는 듯한 모습의 해오라기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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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백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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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날아오르는 중백로. 시원한 날갯짓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