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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끄적끄적

난 박원순 전 시장의 명복을 빌지 않겠다

어젯밤부터 기분이 더럽다. 안희정에 대한 글을 쓴 지 하루도 되지 않아서....

가뜩이나 마누라가 속을 썩여 짜증이 가득한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까지 들리니 잠들기도 힘들었다. 그 이유도 성추행 사건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더 그렇다. 처음엔 나도 그냥 오보이거나 모함이길 바랐다. 그냥 그랬다.

박 전 시장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최장수 서울 시장이라 해도 유력한 대선 후보라 해도 관심 없었다. 왜 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 나오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맘에도 들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일까? 그런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뭔가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 됐다. 정말 많이 잘 못 됐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노 전 대통령부터 정두언, 노회찬, 박원순까지 그나마 양심 있는 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거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도 짜증이 난다. 정말 박 전 시장의 자살 이유가 성추문에 관한 것(그게 사실이든 거짓이든)이라면 진짜 진짜 진짜로 실망이다. 그가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한 실망이 아니다. 그랬다면 정당하게 벌을 받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 죽음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죽음으로 억울함을 풀 수 없다. 그냥 남은 사람들에게 아픔만 준다. 

그의 죽음으로 성추행 고소는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피해자는 어떻게 보상을 받을 것이며, 거짓이라면 남은 가족들과 지지자들은 이 불명예를 무슨 수로 벗을 것인가? 그냥 평생 이대로 묻고 가야 한다는 건 너나 나나 속이 뒤집어진다. 벌써부터 그의 장례식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느니, '세금으로 범죄자의 장례를 치르느니'하는 욕설이 나온다. 솔직히 이미 그를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힌 인물들도 찝찝하긴 마찬가지일 거다. 공허한 외침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

 

 

이한상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보도된 것을 종합해 보면 죄질이 좋지 않은 범죄를 저질렀다"며 "5일 서울특별시 장례와 시청 앞 분향소 설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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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례 방식으로 딴지를 걸고 싶진 않다. 많은 분들이 그의 명복을 빌고 그리워 하지만 난 명복을 빌어주기 힘들다. 아래 박 시장이 직접 썼다는 유서를 보고 난 후 그런 생각은 더 많이 들었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

이 무슨 몰염치한 유서란 말인가?

'죄송하다, 감사드린다, 미안하다'는 자살하는 사람이 남은 이들에게 남길 말이 아니다. 죄송하다면 맘을 다해 사죄해야 하고 감사한다면 모든 능력을 다해 보답해야 한다. 고통을 줘서 미안하다면서 평생을 짊어질 고통을 가족에게 던지고 떠나는 건 아빠가, 남편이 할 짓이 아니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설령 죽는다 해도 모든 것이 다 밝혀진 후에 죽었어야지. 

자신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 셈이냐. 우리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죄인이 됐다. 전 국민은 아니지만 상당수에게는 이미 다 죄인이다. 고소로 인해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고소인, 범죄자의 식구가 돼버린 가족, 서울시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서울시청 직원들,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비난하는 인물들, 범죄자를 옹호하는 지지자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까지. 유력 정치인이라는 존재는 그런 거다.

더 나쁜 놈들은 잘도 살아가는 데 왜 그런 걸로 죽냐고 속상해할 필요 없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는 정의로움과 청렴함만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그 정도도 강하지 못한 사람이 그 정도도 뻔뻔하지 못 한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시민을, 국민을 다른 강하고 뻔뻔한 자들 앞에서 지킨단 말인가?

죽음으로 편해진다면 나 역시 100번은 죽었을 거다.  

난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에 명복을 빌지 않겠다. 잘 죽었다가 아니라, 왜 죽었냐고 따지고 싶다.

P.S. 오거돈, 안희정, 정봉주, 민병두, '손녀 같아 그랬다'던 박희태, 강용석, 윤창중,  '돼지흥분제' 홍준표... 갈길 멀은 우리네 정치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