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씨의 모친상에 정치인들이 조문한 것으로 논란이 많다.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 씨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하고 조문한 정치인들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거지 같다는 말들이 많다. 정의당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라고 논평을 냈다.
그 와중에 김지은 씨는 안희정 씨와 충남도 측에 3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갈 때까지 갔으니 진흙탕에서 끝장을 보자는 심정인 듯하다. 콩밥 먹으며 체력을 기르고 있는 사람을 약해졌다 생각하고 링 위로 부르는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일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정치인들의 조문이 김 씨에게는 오히려 플러스가 될지도 모른다. 안 씨 측이 아직은 남은 게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다 잃고 남은 것이 없는 사람과 진흙탕에서 싸우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김 씨의 손해배상 재판은 조국 전 장관 재판만큼이나 언론의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어찌 됐건 최근 모친상을 당해본 입장에서 안 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한 사람의 조문객이 얼마나 감사할지 절절하게 느껴지기에 맘이 쓰리다. 못난 아들을 둬 떠나신 후에도 가십거리가 된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이 얼마나 클까. 그러게 나쁜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런데 이 논란이 이슈가 되면서 또 다른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든 건 나 혼자였을까?
이 사건은 가해자 1명에 피해자가 여럿인 사건이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김 씨라고 볼 수 있겠으나 못지않은 피해를 본 것이 안 씨의 가족이다. 젠더 감성 운운하려면 김 씨 말고 안 씨의 부인 민주원 씨도 돌아봐 줘야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내 배우자가 단순한 불륜도 아니고 습관성 성폭력범이었다니. 그것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이었다면 그 배신감과 고통은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도 안 간다. 또 그로 인해 충격을 받았을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범죄자를 범죄자인지 모른 채 사랑했다는 이유로 단지 그의 가족이란 이유로 함께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더 보듬어 줘야 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계속 김 씨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난 젠더 운동하는 사람들이 민 씨를 옹호하는 글을 본 적 없다. 민 씨가 김 씨를 불륜녀라고 몰아세울 땐 그저 '남편 구하기'로만 치부했다. 왜 민 씨는 고통받는 여성으로 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남편 구하기라는 생각보다 '불륜녀'에 대한 응징을 원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혹자들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려면 이혼부터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도 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물론 앞으로 상황에 따라 이혼 등의 절차를 밟을 수 있겠지만 그때 되면 이 사람들이 민 씨의 편을 들어줄까?
남편 불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부인이다. 2차로 자녀다. 물론 그게 성폭행이라면 1차 피해자는 상대방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배우자도 큰 아픔을 겪는다는 뜻이다. 이번 조문 건도 속으로 비난하고 선거에서 심판했으면 그만이었다. 그걸 굳이 공론화하고 언론에 내비쳐서 이슈를 만들어야 했나? 무슨 의도로 언론에 안 씨에 대한 이야기를 김 씨에 대한 계속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아무 말 못 하고 피해받는 이가 있다는 것쯤 생각해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그 피해자 역시 여성이다.
평등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평등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입맛대로 피아를 구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답답한 마음에 글을 적지만, 이 글 때문에 이름이 또 한 번 더 인터넷 상에 오르게 된 분들 모두께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 주길 바라는 심정에서 적은 글이니 이해해 주셨길 나 혼자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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