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artists create... great artists steal. [Leonardo DaVinci]
생각해보면 돈을 버는 사람은 뭔가를 개발한 사람이 아닌, 그걸 잘 포장해서 판매한 사람들이었다. 햄프리 데비의 전구 아이디어를 가져다 실용화에 성공한 에디슨, 1자 나사를 변형해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P.L 로버트슨과 F. 필립스가 대표적이다. 어디 이뿐이랴. 디지털카메라는 코닥이 최초로 개발했지만 돈은 캐논, 니콘, 소니 같은 일본 브랜드에서 다 주워 담고 있다. 현대적인 고무 콘돔을 발명한 찰스 굿이어 역시 생전에는 큰 돈을 만지지 못 했다. 콘돔의 대량 생산은 그의 사후 10년이 지난 1870년 경이 되어서야 시작됐으니까.
이 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Pirates of Silicon Valley)'은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기술들을 노략질해 돈방석에 앉은 인물들을 그린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잘 못 알고 있었던 사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상당히 많다. 아이들에게 이 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뭔가 슈퍼히어로 같은 이야기가 아닌 인간적인 부분을 균형있게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그런 의미로 '지난 책을 쓰기 전에 이 영화를 먼저 봤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마저 든다.
1999년 TV용으로 제작한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젊은 시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들이 어떻게 차고에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는 길로 들어섰는지 까지 잘 묘사했다. 실제 빌 게이츠의 경우 영화가 자신을 잘 그렸다고 평했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에 극 중 자신을 연기한 노아 와일리(사족이지만 얼핏 보면 젊은 시절 크리스천 베일이 겹쳐 보인다)를 직접 초청했다. 자신의 연기를 시키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기술에 미친 기술광이라는 거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에 미쳐 학교(하버드)도 등한시하고 알테어 베이직을 만든다. 스티브 잡스는 집에서 직접 홈브루 컴퓨터를 만들어 호응을 이끌어 낸다. 두 사람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에 우리가 조금 다르게 알고 있었던, 어쩌면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서 펼쳐진다.
아래가 내가 잘 못 알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그동안 난 뭘 보고 읽었던 거냐)이다.
- 잡스와 워즈니악이 만든 홈브루에 대한 우선권은 HP가 가지고 있었다. 둘은 HP가 홈브루를 문전박대한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 빌 게이츠는 알테어를 개발한 MITS사에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2배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 1977년 잡스는 게이츠에게 베이직 라이선스를 2만1000 달러에 구입하고자 했다.
- 빌 게이츠는 IBM에서 애플과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애플에 가서는 반대로 IBM 타도를 외치며 이득을 챙겼다.
- IBM에게 판다고 장담한 OS는 개발한 적이 없었다.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컴퍼니의 DOS를 5만 달러에 산 후 MS-DOS로 둔갑해 IBM에 되팔았다. 물론 대박이었다.
- 애플 리사에서 처음 선보인 마우스와 그래픽 인터페이스(GUI)는 제록스에서 개발한 것을 보고 훔쳤다(물론 제록스는 이 기술에 흥미가 없었다).
- 빌 게이츠는 애플의 리사에 적용한 마우스와 GUI를 보고 관련 기술을 약탈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애플과 파트너십을 맺고 훔쳐서 만든 것이 Windows 다.
결국 원피스를 찾고 해적왕에 등극한 것은 빌 게이츠였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1세대 해적 전쟁은 어느 정도 막을 내린 것 같다. 지금은 2세대 해적 전쟁이 한창이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전기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상의 명과 암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거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전기 영화는 대부분 대상의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며 그 안에서 최대한 교훈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는 스티브 잡스의 광기와 독단, 빌 게이츠의 비열함과 사기꾼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이 그들의 성공 비결이라는 것 마저 숨김 없이 전달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의 시대적 혁명을 칭송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잡스가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를 연 것이나 게이츠가 소프트웨어로도 돈을 벌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 같은 일들 말이다. 그럼으로써 전기를 보는 관객들에게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다. 성공 이면의 여러 가지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성공을 위해 저런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 삶에 만족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인생을 위로하는 코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영화는 그다지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애초부터 TV용으로 만들어진 데다 영화 사이에 개그맨 같은 해설자가 등장해 뜬금포를 날려대는 통에 집중도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소재의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이 영화 우리나라의 정식 제목은 '실리콘밸리의 신화'였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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