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전문가이고 기자이기 때문에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일반인들의 넋두리야 그렇다지만 진짜 전문가들, 진짜 언론인들의 글을 보면 입이 쓰다. 쓴 풀을 씹는 기분이다. 근데 약초가 아니라 독초를 씹는 기분이다.
특히 언론인들은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 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부를 탓하고 종교를 탓하고 이제는 과학자도 탓한다. 나부터 그렇지 않은가 돌아본다. 근데 나도 그랬네. 쩝. 이쯤에서 잠깐 반성하고...
아무튼 코로나-19 사태에 과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출연연 과학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뭐하느냐는 거다. 너무 자주 나오는 이야기라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최근 나오는 이야기는 결이 조금 다르다.
아래 엄치용 코넬대 의생명공학과 연구원의 시론이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글 중에서 그나마 인정할만하다. 그런데 이 글이 나온 시점이 조금 아쉽다.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나 혹은 사태가 마무리된 후 점검하는 때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우리는 사태가 한창일 때 분석하고 때리는 행태를 많이 보이는데 정작 이후에는 그런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또 다음 사태가 터지면 이런 글들이 나온다. 그동안 뭐 했냐고. 전부 같은 일 하고 있었을 거다. '먹고사는 일'.
과학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거나 보이지 않는다는 건 좀 아니다. 전염병 사태에 대해 과학자를 욕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과거에 돈 안 되는 연구만 한다고 질책하던 이들과 실루엣이 비슷하다.
사스, 메르스에 대한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돈이 되지 않아서'였다. 환자가 터지도록 많았던 신종플루의 치료제 '테라플루'도 처음에는 높은 가격이 문제였다. 그보다 환자수가 훨씬 적은 사스, 메르스 바이러스에 제약사들이 투자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 제약회사들이 앞 다퉈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제 연구를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늘어나는 환자 덕에 '돈이 될 것 같아서'다.
사실 돈이 안 될 것 같은 분야의 연구를 국가 출연연구원에서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분위를 만들었던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도 사람이고 먹고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 눈치를 주는 걸까? 정부일까? 그렇다면 그런 정부에 눈치를 주는 건 누구일까?
지금 보이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전문 분야가 아니므로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길만 터주면 뭐든 해낼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과학자들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과학자 한 사람이 길을 터주면 서로 달려들어 내용을 공유하고 결과를 내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ETRI 이순석 박사가 페이스북에 개설한 ICT특공대@코로나19다.
IT 전문가인 이 박사는 이 공개 그룹을 통해 IT 전문가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민휘 스토리텔링기술연구소장은 대면접촉이 아닌 통신 접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것임을 밝혔다. 이상길 새길로시스템 대표이사도 자신 공개 그룹에 '번개 개발공동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곳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코로나-19 관련 서비스/플랫폼/데이터셋을 정리해 놓은 글도 있다. 그 외 코로나-19와 관련한 프로그램이나 앱을 개발하고 공유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공개 그룹을 통해 IBS 우성종(Sungjong Woo) 박사가 직접 만들어 배포하는 '확진자 1인당 확진자 그래프'가 알려졌다. 좀 더 과학적으로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다. KAIST 이원재 교수도 지난 3월 3일 "안철수 씨가 코로나 확진자수가 인구 대비 중국에 달했으므로 심각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 간 비교를 위해서는 검사자 대비 확진자 수를 써야 한다"라며 '확진자수와 검사당 확진자 수 추이'를 제작해 자신의 페이스북(Wonjae Lee)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IT 분야뿐만이 아니다. 동아사이언스의 기사를 보면 국내 제약사와 화학연구원 등이 발 빠르게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진단키트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다양하게 개발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너도나도 진단키트 지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림대 성심병원 이재갑 교수는 “우리나라의 진단키트 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매우 빠른 편이다”며 “이는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진단검사의학회, 그리고 국내 개발 기업들이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들 모두 과학자다.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는 "과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명문대 포스텍은 지금 우리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책무가 있습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있어도 국민주치의는 없습니다. 제가 일전에 의료계와 의료체제를 연구한 바 있는데, 국가 General Surgeon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닙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대통령은 국가 GS에게 지휘권을 넘겨서 그로 하여금 최고의 감염전공의사진을 모아 비상회의를 꾸리고 일거수일투족 일일 대책을 발령해야 합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무엇을 압니까? 그가 대구에 내려가 현장을 지휘한들, 과학적 대책과 예방정책을 고안할 수 있을까요? 이게 한국의 실정입니다"라고 한탄했다. 또 "의과학자와 의료계의 제안을 정치적으로 묵살했던 탓입니다"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 의료계는 현재 정치적 이유로 내분이 심하다. 최대집 회장을 선두로 한 의협에서 '코로나19 대책 위원회'를 '비선 실세'로 몰아 해체시켰다. 의협은 지난 2월 5일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대한의사협회에서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우리는 세월호 대책본부에 이공계 인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래서 이번 대책본부라고 할 수 있는 '코로나19 대책위원회'에는 관련 전문가를 모아 구성했다. 그런데 정치를 개입시켜 결국 사태 중간에 해체시키고야 말았다. 프랑스 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이 생각난다.
결국, 일부 의사들은 의협 회장 사퇴를 부르짖고 있다.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근데 이쪽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국민 청원 게시자가 '인도주의의사협의회' 회원인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들을 부추기는 것은 언론과 정치다. 왜냐면 이들은 남 탓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문제고 전문가가 문제고 과학자가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인데 말이다. 그들만 조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비난과 비판은 사태를 해결한 후에 날카롭게 하자. "그땐 가만있다가 왜 다 지난 지금 난리냐?"라는 식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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