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지키지는 못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이 말은 ‘맹자(孟子)’ 이루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알고 있다. ‘내가 그러한 처지였으면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중국 고대 임금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자세히 이야기할 건 없고. 반대말로 자기에게 이롭게 행동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역지사지라는 말을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19 사태를 보면서 느껴지는 상황이다. 몇 가지 사태에 걸쳐 역지사지해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당연히 첫 번째가 중국발 입국 금지다. 얼마 전 적은 글에서 해외 입국 통제는 실익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아직도 야권을 포함한 여러 집단에서 '중국인 입국 금지'를 외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최근 사건이 계속 터진다.
당연히 한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우리는 입국 통제하지 않았는데 너희는 왜 강제 격리냐?"부터 시작해서 '배은망덕',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도 빨리 입국 금지부터 했어야 한다"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그런데 중국은 아직 한국'발' 입국 금지는 아니다. 그리고 지방정부 차원이나 중국인들 일부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이지 중국 정부가 나서서 격리를 지시한 것도 아니다. 기사 내용 중 일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한국인 차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중국 외교부나 지방 정부 관계자들은 자신들은 그런 지침이 없다면서 지역사회 주민위원회에 책임을 미루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교묘하다면 교묘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 정치권에서 한국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리진 않는다. 정부 방침이다. 1당 체제의 특징일 수 있다.
여기서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부에서는 중국'발' 입국 금지는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제1야당에서 지속해서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외치고 있다. 이 사태를 중국인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떨까? 상황이 반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실제 우리나라가 강제 격리를 시키지 않을 뿐이었지 중국'발' 입국자에게 차별 대우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전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추적하고 관리하고 나섰다. 중국에서 한국인들을 이렇게 했다면 지금 중국인 입국 금지를 외치는 세력에서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겠다.
중국이야기는 그만하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글을 올리는 것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할 거다. 내가 얼마나 중국이라는 나라를 싫어하는지 알거든. 일본과 중국 중 어느 나라가 더 싫은가라고 물으면 정말 고민을 많이 해야 할 정도로 그 나라, 그 나라 사람 싫어한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얼마 전 글에서 이번 코로나 19 사태는 메르스, 사스보다 신종플루와 비슷하고 그때와 비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치료제가 개발되면 신종플루처럼 사망률이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전했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지금처럼 난리를 펼칠 상황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좀 더 해본다. 오늘은 역지사지가 핵심이니 이번 사태가 2009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자. 일단 코로나 일지를 좀 찾아봤다. 신천지 사태와 상관없이 현실적인 내용 그대로 일자별로 되짚어 봤다.
코로나 19는 지난해 12월 31일 해외 첫 사례가 보고 됐고 20일 후 국내 첫 발생자가 나타났다. 그 후 1달 후인 2월 20일 국내 확진자가 100명이 됐다. 그 사이 정부는 1월 27일 국가전염병 위기단계를 '경계' 수준으로 향상했다. 국내 확진자가 100명이 된 2월 20일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했고 5일 후인 25일 10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신천지 사태가 2월 19일이다. 2월 23일 정부는 국가전염병 위기단계를 '심각'수준으로 향상했다. 2월 26일 2000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정부의 대처가 한 박자씩 늦는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순서 일자별로 나열하니 정말 그렇게 보인다. 그럼 2009년 신종플루 때를 되짚어보자.
신종플루는 해외 첫 사례 보고 8일 만에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다. 확진자 100명이 나오는데 2달 정도 걸렸고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는 7월 중순이 되자 국가전염병위기단계를 '경계'로 향상했다. 국내 확진자가 1000명이 넘은 건 7월 22일. 국내 확진자 1만 명이 된 건 9월 15일이다. 그리고 11월 2일 하루 9000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대유행기에 진입하자 정부는 국가전염병위기단계를 '심각'으로 향상한다.
둘 중 어느 정부가 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는지는 각자 판단하기 바란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그때 정부가 문재인 정부나 노무현 정부였다면 어땠을까?
알다시피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의 발원지는 미국, 멕시코다. 하지만 미국산 돼지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을지언정 미국인이나 멕시코인의 입국을 불허하자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때 신종플루의 발언지가 중국이었으면 어땠을까? 입장을 바꿔 한번만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부화뇌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쓰는 김에 한 가지만 더 쓰자. 앞에서 코로나 19의 치사율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공유했다. 그 이유는 너무 큰 사회적 혼란을 피하자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무슨 무정부 사태까지 벌어질 것처럼 선동하면서 사재기 등을 유도하는 글을 퍼뜨리던데 잘못하면 '무식'하단 소리 듣는다.
좀 찾아봤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망자만 해도 상당하다. 안 아프려면 평상시에도 개인위생 철저히 하자. 면역력 키우는 것에도 힘쓰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통계청 사망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질병관리본부 인플루엔자 표본감시자료 등을 조사하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법론으로 독감 바이러스 감염에 의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감 사망자수는 2,370명이다.
그리고 의사협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전문가 집단'의 의견이라면서 '정부'가 그 의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질책하고 있다. 의사협회장 최대집이 전문의도 아닌 일반의고 의술보다는 정치적 활동을 더 많이 했다는 지적을 하자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발표하는 것이라 반발한다.
그런데 이 의사협회는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단체가 아니라 의료법에 존립 근거가 명시된 단체다. 의협 회장 선거의 투표권이 일부 의사들에게 제한되어 있다. 이 단체의 대의성에는 항상 의문이 따라다녔다. 내가 아는 의사들도 의협의 발표와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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