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축구 선수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하는 편이다. 예전이 박주영을 옹호하는 글을 블로그에 썼다가 뭇매를 맞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악플에 상처 받는 살짝 겁 많은 영혼이니까. 그래도 무플보단 악플이 좋다. 이 글은 개인적 의견이니 의견이 다른 건 환영이다.
이번에는 기성용에 대한 이적 사태에 대한 언론과 일부 팬들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 또다시 글을 올린다. 기업이라 할 수 있는 구단보다 근로자 입장인 선수 측에서 바라봐 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건 노사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기성용은 낮은 자세로 친정을 찾았지만 낙담했다', 'FC 서울은 기성용을 놓쳤다', '팬들은 분노했다', '구단은 소통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기성용의 라리가 진출을 일단 축하하는 척하면서 라리라 1부도 갈 수 있는 선수를 놓친 FC 서울을 은근히 돌려 까는 모양새다.
기성용은 정말 라리가 1부 리거가 되는 건가?
우선 기성용이 간다고 하는 라리가 팀을 보자.
처음에는 '레알 베티스'라고 설레발을 쳤으나 최종적으로 마요르카로 가는 것이 유력하다. 기사에는 '스페인 1부'라고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지만 얼마나 1부에서 뛸 수 있을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마요르카의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2월 22일 현재 마요르카의 라리가 순위는 아래와 같다.
붉은색으로 순위가 칠해져 있는 18위부터가 강등권이다. 즉 다음 시즌부터 2부 리그로 내려가는 팀이라는 뜻이다. 마요르카는 강등권인 셀타 비고보다 1경기를 더 치른 상황에서 승점 1점을 앞서고 있다. 셀타 비고가 다음 경기에서 승리하면 순위가 바뀐다. 승점만 놓고 보면 마요르카의 19, 20위 하락도 불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기성용이 1부 리그에서 얼마나 더 뛸 수 있을지 아직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FC 서울이 라리가 1부 리거를 데리고 올 수 있는 기회를 차 버렸다는 건 조금 오버라고 본다. 현재 마요르카의 대표 선수는 일본의 기대주 쿠보 다케후사다. 이 친구는 여러 클럽을 전전하다 레알 마드리드 후베닐 A로 갔고 거기서 마요르카로 임대 온 선수다. 2001년생으로 여러모로 기성용보다 유리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이적료 없이 13억 원 정도의 연봉으로 여겨지고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국가대표도 은퇴한 기성용이 쿠보보다 좋은 대우를 받고 옮겼을 것 같지는 않다.
왜 FC 서울은 기성용에게 위약금을 받으려고 하는 건가?
그럼 FC 서울은 왜 기성용을 잡지 않았을까? 언론에서는 계속 위약금 문제를 걸고넘어지고 있다.
그러면 이 위약금은 어떻게 발생한 걸까? 일단 기사 제목과 달리 '쌍용' 모두에게 위약금이 걸려있는 건 아니다. 이청용은 위약금이 없다. 이청용은 위약금이 문제가 아니라 이적료가 문제였다. 그럼 이청용에게 없는 위약금이 기성용에겐 왜 있는 걸까?
FC 서울은 2009년 기성용이 셀틱으로 이적할 때 발생했던 이적료 중 일부를 기성용에게 줬다. 그러면서 한국으로 복귀할 때 서울이 아닌 다른 구단으로 갈 때는 받은 금액 이상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계약을 걸었다. 말 그대로 계약이다. FC 서울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기성용의 연봉은 20억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약금은 200만 유로, 즉 약 26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던 차이다. 전북 현대는 사실상 40억 원 이상을 지불했어야 했다는 이야기고 서울은 처음 기성용에게 줬던 이적료의 일부를 보상받으려 했을 거다. 아무리 위약금을 반으로 줄인다고 해도 전북 현대가 OK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FC 서울이 돈을 모두 포기하고 기성용이 원하는 연봉을 다 주기도 애매한 상황이었을 거다. 현대 공식 발표에서 위약금은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어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 기성용은 스페인에 한국에서 제안한 것보다 훨씬 못한 대우를 받았을 거 같다.
기성용은 예전의 기성용인가?
기성용은 구자철과 함께 대표팀을 은퇴했다. 구자철 선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유럽 리거가 한국 국가 대표로 뛰는 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성용도 2019년 UAE 아시안게임 경기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후 회복이 더뎌 조기 복귀하기도 했다. 무리한 차출 등으로 나이에 비해 몸이 일찍 망가졌다는 거다.
31살이면 축구 선수로 한창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유럽파 국가 대표 출신들은 그렇지 못하다. 박지성이 그랬고 박주영도 그랬다. 구자철, 이청용 다들 나이에 비해 일찍 축구화 끈이 느슨해졌다.
기성용의 클럽 출전 기록도 그다지 좋지 않다. 이름값만으로 20억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기엔 고민이 많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 2016/17 시즌: 25경기(선발 15경기) 1 도움
- 2017/18 시즌: 32경기(선발 25경기) 2골 3 도움
- 2018/19 시즌: 19경기(선발 15경기) 1 도움
- 2019/20 시즌: 3경기(선발 1경기)
국가 대표 경기도 없는 데다 소속팀 출전도 없고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음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금방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몸 상태와 나이도 아니다. 스타성 하나만으로 돈을 쏟아 붓기는 조금 겁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기성용이 스페인으로 간 건 잘한 거라고 본다. 어설프게 한국에서 이슈 메이커가 돼 신문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국대 신경 쓰지 않고 축구만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부활의 날개를 펼 수 있기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마요르카가 강등권에 들어가면 안 될 것이고 많은 출전 기회를 얻어야 하겠지만.
스페인에서 축구 잘 해서 손흥민 못지 않은 영웅이 될 수 있길 진심으로 진정으로 기원한다. 우린 지금 어디서든 영웅이 필요한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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