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008년 작 '해프닝'에서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앞다퉈 자살한다. 이유? 그런 것 없다. 원인? 영화 끝까지 안 나온다. 그냥 갑자기 죽음을 선택하는 인류가 늘어날 뿐이다. 비슷한 스토리인 넷플릭스의 '버드박스'는 뭔가와 눈을 마주친다는 설정이라도 있지만 '해프닝'에서는 그런 것도 없다. 그냥 죽는다.
후에 찾아보니 한 영화 해설에 '식물에서 내뿜는 독성 물질이 사람들의 신경에 영향을 줘서 자살을 유도한다'고 나와 있다. 그랬나? 잘 모르겠다. 어찌됐건 영화 속 사태는 시간이 흐르자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원상태로 돌아온다.
처음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넘쳐나는 인간의 수를 줄이기 위해 지구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 아니었나'였다. 지구가 원하는 만큼의 인간의 수가 줄었기 때문에 식물에서 독성을 내뿜는 일을 그만 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지.
WHO가 코로나19 사태를 '팬데믹'에 준한다는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팬데믹이라고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발표와 비슷한 시기에 이런 기사가 함께 등장했다.
신기하다. 사람이 죽어나가면서 두려움에 활동이 줄어들자 거짓말처럼 지구가 살아나고 있다. 역시 인류는 지구에게는 나쁜 바이러스 같은 존재였던 걸까?
인류 역사에서 꾸준히 이어진 유행병
팬데믹과 같은 유행병은 인류 역사에 꾸준히 있어 왔다. 대표적인 질병으로 BC 403년에 그리스를 강타한 아테네 역병을 꼽을 수 있고, 2세기에 창궐한 안토니우스 역병도 있다. 서기 541~740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유행했고, 14세기에는 그 유명한 페스트가 타노스 만큼이나 인류의 수를 줄여 벌였다. 수천만명의 인류 목숨을 앗아갔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페스트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의 발원지가 중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네-
이후에도 1665년 영국 런던에서 역병이 돌아 10만 명가량이 사망했고, 19세기에는 3차 대역병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인류의 개체수가 다시 한 번 확 줄었다. 20세기 초에는 스페인 독감이 세계 인구의 1%에 해당하는 2000만~3000만 명을 죽였다. 에이즈,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코로나19로 이어지는 유행병에 인구는 계속 신음하고 있다. 이렇게 유행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수 세기를 뛰어넘고 그 모습을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힌다.
그런데 '역지사지'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인간이야 말로 지구에게는 징그럽게 사라지지 않는 고질병 같은 존재일 것 같다. 지구 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인류 아닌가. 우리 신체의 여러 가지를 고장 내는 바이러스 같은 짓을 인류가 지구에게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 면역 반응과 비슷한 현재 지구의 반응
사람이 병에 걸리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일단 열이 난다. 열이 나는 이유는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가 인터류킨이라는 물질을 분비해서 온도조절 중추인 시상하부의 온도 조절기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열이 오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약해지고 철의 양이 감소한다. 미생물의 먹이인 철의 공급을 차단해 굶겨 죽일 셈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지구 온난화가 이어지면서 다양한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인간들의 의식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째 우리 몸에서 열이 나는 이유와 비슷하다?
또, 우리 몸은 병원균인 외부 항원이 침투하면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선천면역은 호중구, 대식세포, NK 세포 등이 1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병원체와 전투를 벌인다. 후천면역은 특수부대라고 볼 수 있다. 특정한 병원균의 단백질을 인식하고 그 세포만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공격해 퇴치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면역 반응과 현 지구의 상황을 비교해 보자. 인간의 수가 늘어나고 지구를 파괴하면서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바이러스는 인간을 죽인다. 즉 지구 입장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감염 세포를 죽여나가는 거다. 인간만 죽이는 바이러스는 지구의 후천면역 세포라고 봐야할까? 아무튼 결국 지구는 인간을 병원체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실제로 인간은 병원체 같은 일만 해 왔던 것도 사실아닌가. 암 세포의 위험성을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다.
이제와서 '환경보호'를 부르짖지만 이미 늦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 병원체가 아니라고 변호할 시기는 오래전에 사라진 것 같다. 그러기에는 지구를 너무 많이 아프게 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같은 병원체의 생존 방식을 배워야 할지 고민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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