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평생 페미니스트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팔자인 것 같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유명인도 자타공인 페미니스트고 나 역시 여성을 굉장히 좋아하는 남성으로서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천성적인 보수성향이 발목을 잡는다.
아직도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믿고 있고 그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다름을 주장한다. 그저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의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근데 그런 걸 다 떠나서 아직도 페미니즘의 정의를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
영화배우 엠마왓슨은 2014년 ‘히포쉬(HeForShe)’ 캠페인 발족 당시 유엔 연설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해 위와 같이 이야기했다. 이어 “여성의 권리 투쟁은 남성에 대한 증오가 아니다”라며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남성을 싫어한다는 의미로 전달되는데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페미니즘이 성평등과 같은 뜻이라면 난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할지언정 페미니스트를 응원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들려오는 몇 가지 이야기들은 여성 운동이라고 보기보단 갈등을 부추기는 형태로 보이는 것이 문제다.
지난 3월 6일 KBS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에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돌아보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방송이 있었다. 여성의 차별 철폐 운동이 100년 정도 되면서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통계를 예로 들었다. 이게 가관이다.
1. 일제시대 조선인 여성 노동자 임금이 일본인 남성 노동자 임금의 1/4이었다.
2. 지난해 통계 정규직 남성 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여성자 노동자 임금이 37.7%다.
3. 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77%다.
4.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전체 여성 노동자의 50.8%다.
이런 통계를 들이밀면서 "여전히 우린 피해자다", "너희 남성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짜증이 나고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했던 남자들까지 등을 돌리는 거다.
통계를 가지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1. 일제시대 조선인 여성 노동자 임금과 조선인 남성 노동자 임금의 차이를 이야기했어야 한다.
2.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 임금 대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임금을 이야기했어야 한다.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748만 1천 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금근로자 2천55만 9천 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6.4%였다. 방송에서 예를 들은 작년 연말 집계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작년 상반기 기준 남자 44.9%, 여자 55.1%다. 약 10%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조선시대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볼 수 없나?
물론 아직까지 여성이 사회생활에서 남성보다 차별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임금 차이도 뚜렷하다. 아직 남성 대비 여성의 평균 급여는 7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 간극은 더 커지고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비정규직 많은 것도 맞다. 나도 인정한다. 반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소연하는 남성들의 입장도 인정한다.
이 차이를 이해와 설득,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 변화로 메워 나가는 것이 성평등 운동이고 사회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잘 못 된 건가?
어찌 됐건 이러한 부분은 저런 이상한 통계 조작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점이다. 왜 저런 이상한 통계를 만들어서 갈등을 유발하는가 말이다. 미친 거 아냐?
하나 더 있다. 여성의 날이 3월 8일이라 이때를 맞춰 여러 여성 문제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아래 기사도 그중 하나다.
여기에 대해서는 남성들의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다. 차치하고 기사 제목부터 [팩트체크]라고 하니 몇 가지 문제점만 나도 '팩트 체크'하자.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의 발언을 보자.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일방 진술만으로 기소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보강하는 수많은 증거를 갖춘다”며 “동의를 하지 않았다는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는 검사가 입증한다. 동의 여부 판단의 모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라고 말했다.
검사가 책임지고 검사가 확인하는 것이 성폭력 사건의 실체다. 즉 검사가 성폭력이다라고 생각하고 고소하면 성폭력이라는 거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발표된 성폭력 무고죄 검찰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 고소 중 82.6%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성폭력 무고 고소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에서도 15.5%는 무죄로 결정됐다. 성폭력 가해 혐의를 받는 이가 피해자를 상대로 낸 무고죄 고소 사건 중 실제 무고는 극히 드물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성폭력은 검사가 성폭력이라고 하면 성폭력이 되는 건데 무고죄는 검사가 무고라고 판단해도 15.5%가 무고가 아니다. 2018년도 우리나라 1심 무죄율은 0.79%다. 2심으로 가도 1.69% 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2018 사법연감은 강간과 추행의 죄·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성폭력 관련 죄목으로 형사공판에서 유죄가 선고된 비율이 90% 이상이다.
물론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다.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로 풀려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성폭행에 대한 유무죄 판단 기준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죄를 받은 건 아니다.
아무튼 뭔가 이렇게 꼬인 이야기가 매스컴을 통해 계속 퍼져나가니까 남녀 갈등이 유발하고 아래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거다.
솔직히 나도 저 상황에서 선뜻 손을 내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여성의 최대 적은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의 최대의 적 역시 페미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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