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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기자 명함 내세운

대전에도 재즈 열풍이 일어나길


건물 4층에 있는 클럽에 들어서니 갓 연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가 몸을 감싼다. 다 켜지지 않은 조명에 클럽 안의 술병이 더욱 돋보인다. 무대 뒤 벽면에는 크리스 보티(Chris Botti, 미국의 트럼펫 연주가)가 스팅(Sting)과 함께 ‘Shape of my heart’를 연주한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힘 있는 트럼펫 음색이 여름밤 클럽 안을 서서히 채워 나간다.


대전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옐로우택시(YellowTaxi)’는 멋진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지역 명소다. 아직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전에서 옐로우택시만큼 양질의 재즈 공연을 계속 즐길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이곳을 운영하는 박종화 씨는 공연 운영이 지속해서 적자를 불러옴에도 꾸준히 재즈 뮤지션을 무대에 올린다. 마침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날도 재즈 밴드 ‘이승은 트리오’의 연주가 있는 날이었다. 공연 시작 전 약 1시간 동안 박종화 씨에게 그의 재즈 인생과 클럽 운영에 대해 들어봤다.


지역 포크 뮤지션이 재즈 클럽 사장으로


대전에도 한 때 음악 감상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아마추어 음악인(대부분 통기타 가수였다)이 맘껏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있었다. 그 중 ‘빌보드’와 ‘엘브즈’는 당시 대전 젊은이들에게는 60년대 서울의 ‘쎄시봉’ 못지않은 인기 장소였다. 지금은 국민가수가 된 신승훈도 그곳에서 통기타를 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박종화 씨도 그곳에서 연주하던 아마추어 가수 출신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서울로 올라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게 됐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재즈가 좋아졌다.


“종로의 한 레코드점에서 크리스 보티의 음반을 처음 샀던 기억은 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재즈를 듣고 좋아하게 됐는지는 정확하지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습니다.”



대전으로 돌아와 가게를 열었지만, 처음부터 재즈 연주를 할 수 있는 클럽은 아니었다. 손님들을 위해서 바 안에서 통기타를 들고 예전 실력을 뽐내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조그마한 무대를 만들게 됐고, 음악 하는 후배의 요청으로 하나씩 장비를 갖추게 된 것이 옐로우택시의 전신 ‘쿨 바(Cool Bar)’였다. 쿨 바는 2002년 즈음 재즈 밴드를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재즈 클럽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하지만 한때 은행동의 명소로 꼽혔던 이곳은 경영악화로 인해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둔산동으로 장소를 옮겨 옐로우택시가 탄생한다. 


“쿨 바가 망하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솔직히 대전에선 재즈 클럽 경영이 어렵습니다. 옐로우 택시에는 어디에도 ‘재즈 클럽’이라는 명칭이 없습니다. ‘라이브 카페’라는 단어도 없고요. 주로 재즈 밴드가 연주하지만, 록 밴드가 서거나 클럽 DJ가 음악을 틀기도 합니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면서 운영


한 달에 3번 이상 공연을 열지만,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아니 받지 못한다. 입장료를 받으면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이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2~3개월 입장료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철회했다. 무대에 오르는 밴드 실력은 반드시 검증한다. 무대에 올릴 밴드는 꼼꼼하게 고르자는 것이 박종화 씨의 운영 철학이다. 이들은 적은 액수지만 연주비를 받는 프로들이다. 설렁 설렁 이란 있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7~80년대 인기 드라마였던 ‘수사반장’의 타이틀 음악으로 유명한 국내 1세대 재즈 뮤지션 류복성 씨의 공연이 펼쳐졌다. 국제 예술대학 스튜디오 작곡과 음악과 학과장인 원영조 교수가 이끄는 밴드 ‘The W’의 공연도 훌륭했다. 훌륭한 밴드의 음악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지만, 아직 공연 후 적자를 면한 기억이 별로 없다.



“오디션까지 본 후 실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무대에 올리지 않은 밴드도 종종 있습니다. 당사자에겐 속상하고 불쾌한 일일 수 있지만, 최소한의 음악적 자존심은 지켜가며 가게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제 기준이기 때문에 좋지 않게 보는 분들도 계시죠.”


지금까지는 서울 밴드를 많이 무대에 세웠지만, 앞으로는 지역 뮤지션의 공연도 자주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7곡을 연주한 ‘이승은 밴드’도 대전 지역의 어린 밴드다. 


재즈는 뮤지션 스스로 노력해야 전파된다


일반인들은 재즈는 막연히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재즈는 어려운 음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즈 중에도 종류가 다양한 만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편한 연주도 많다. 이러한 부분을 알리기 위해서는 뮤지션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박종화 씨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버스킹(길거리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 행위) 문화가 많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재즈 뮤지션도 이런 활동을 많이 할 필요가 있어요. 연주하는 곡도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곡을 많이 섞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에게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가게 사장일 뿐이니까요.”



박종화 씨는 지난해 9월에 설립한 ‘대전재즈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대전 재즈 음악을 알리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협회 주관의 공연 행사도 희망한다. 다만 예산 문제 등 아직 자체 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긴 어렵다. 일단 재즈 문화를 보급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는 상황이다.


음악은 콘서트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좋은 감상법이 없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해도 현장의 감동을 대신할 순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가까운 곳에 재즈 공연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시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이다. 대전 시민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혜택을 맘껏 누려 재즈 문화가 널리 확산하길 희망해본다.



위 기사는 ‘대전문화재단 문화예술 서포터즈’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