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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영화와 음악

빈속으로 봐도 된다. '아메리칸 셰프'

 

 

나이가 마흔이 넘다 보니 갈등구조가 심한 영화는 너무 불편하다.
내가 막장 드라마를 절대로 보지 않는 이유가 그런 이유다. 
그냥 보는 내내 기분이 좋고 행복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끌린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상쾌함이 든다. 

그렇다. '아메리칸 셰프'가 바로 그런 영화다.

 

 

제목부터 셰프이니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영화 중간중간 정말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음식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 함정.

우리나라에서는 이 영화가 흥행이 안 될 것을 우려했는지
최근 국내 TV 프로에서 가장 핫한 주제인 음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빈속에 보면 안되는 영화라느니, 푸드코미디라느니...

거기다 영화 내에서는 그저 우정 출연 정도에 불가한 
로다주나 스칼렛 요한슨을 포스터 전반에 내세웠다.
영화 아이언맨의 연출자였던 존 파브로에 대한 감사의 표시 아니었을까 한다. 
뭐 그 정도였다는 거지.
국내 영화사의 이런 홍보 방법은 사람들의 흥미를 반짝 끌 수는 있겠지만,
'뭐여?'라는 허탈감도 함께 준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은 
포스터의 홍보 문구에 절대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

 

 

뭐 그런 홍보수단을 쓰지 않아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이유를 꼽아도 수십 가지를 넘길 수 있겠다.

우선 내 블로그니만큼 여자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스칼렛 요한슨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면 그녀보다 훨씬 육감적인
소피아 베르가라에 주목하시라. 스칼렛은 잊게 될껄?

극 중에서 주인공의 전처로 나오는 그는 예쁘고 몸매 쩔고 재력가에 
세상에서 남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스페인어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착한 쿠바 여성으로 나온다. 나쁜 점이 하나도 없다.
자신이 일하는 동안 전남편을 보모처럼 부리는 것까지도 사랑스러울 정도다.

음식? 영화 예고편에 나오는 수많은 양식보다는 쿠바 샌드위치에 침을 흘릴 거다.
역시 음식은 길거리 음식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서 찾는 행복을 갈망하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셰프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음식 하나 맘대로 만들지 못하고
평론가에게 받은 혹평에 상처받아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이 투영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말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해도 되겠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레스토랑의 유명 셰프 때로 인정받을 때보다 
모든 것을 잃고 새로 시작한 작은 푸드트럭에서 훨씬 더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행복한 모습이 너무나 잘 이해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음식보다 미국 서부와 남부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마이애미 비치, 뉴올리언스, 텍사스까지. 그리고 각 지역에 맞는 음악들.

아들과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친구를 트럭에 태우고 
행복이 듬뿍 담긴 음식을 팔러 다니는 주인공.
이 푸드트럭에서 만드는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은 물론 가족의 행복도 함께 찾을 수 있다는 간접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물론 난 아직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지만.

착한 사람들 가득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 덕에 우울했던 2월이 조금은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