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정말 좋아한다. '초속 5센티미터'나 '언어의 정원',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내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상위권에 항상 머물러있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묘사 때문이다. 스티븐 킹이 글로 하는 묘사의 달인이라고 하면 신카이 마코토는 그림 묘사의 달인이다. 스티브 킹의 글을 읽으면 문자가 영상으로 펼쳐진다. 반대로 신카이 마코토의 영상을 보면 책에 적혀있을 것 같은 문장이 머릿속에 나열됐다. 그런 느낌이 폭발한 작품이 '언어의 정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극 중에서 '만요슈'가 좋은 매개체로 실려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만. 물론, 실사를 뛰어넘는 영상 눈을 편안하게 하는 건 물론이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에서부터 이런 느낌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투자 금액이 커지면서 퀄리티는 점점 좋아지고 내용은 거대해졌다. 하지만 원래 신카이 마코토에게서 느껴왔던 감성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스즈메의 문단속'은 영상만 신카이 마코토지 '지브리 영화'가 아닌가 느껴질 정도다. 물론, 신카이 감독 특유의 '남과 여', '상실', '성장' 같은 기본 문법은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그걸 풀어가거나 표현하는 방식이 더 대중적으로 변했다. 상업 영화가 대중 친화적이라는 것은 욕이 아니라 칭찬이다. 하지만, 더 이상 '언어의 정원'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느껴지지 않고 지브리 영화에서 받는 감동이 느껴진다는 건 내게 있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잘은 모르지만, 수익을 위해서 많은 부분 타협한 것은 아닐까 하고 위로해 본다. 회사가 커지면서 먹여 살려야 할 친구들도 많고 그러자면 좀 더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나마 1~100까지 모두 상업적이기만 한 작품이 아니라는 건 천만다행이다. 하긴 그러니까 지금처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겠지만.
여전히 작품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고 있고, 작화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메시지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것이 예전 그의 방식이 아닌 것 같다는 건 역시 혼자 속상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내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 영화 중 최악은 '날씨의 아이'였다. 뭔가 지브리스러움과 디즈니스러움을 혼합한 영화였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담아 이런저런 실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너의 이름은'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어떻게든 성공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을 거라는 어설픈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다음 작에는 조금 힘을 빼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역시 힘을 많이 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만 '이제는 다시 언어의 정원 같은 작품을 볼 순 없겠구나'라는 아쉬움은 더 커졌다. 여전히 대중 친화적인 장치가 많고 그로 인해 감정선이 자꾸 끊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과 이미지가 너무 겹친다. '루주의 추억'이 흘러나올 때는 솔직히 반갑기도 했지만.
아무튼 앞으로 보게 될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는 좀 더 자신만의 문법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tribute는 충분히 마쳤다. 이제 신카이 마코토 본인에게도 거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좀 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해도 좋을 것 같다. 관객들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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