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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영화와 음악

그시절 그영화 - 엠파이어 레코드(Empire Records, 1995)

미국 경제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말 그대로 침체의 터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를 세계의 기축 통화로 삼은 ‘브레턴 우즈’ 체제가 70년대 중반에 무너지면서 허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죠. 레이건 대통령 취임 후 공화당이 국방비 증액과 감세 정책을 추구하면서 재정 적자가 불어나고 국제 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시대 미국 문화는 더욱 빛납니다. 

특히 영화 분야에서 눈부신 걸작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간디’, ‘아마데우스’, ‘플래툰’, ‘마지막 황제’, ‘레인맨’ 같은 영화들이 모두 1980년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영화들입니다. 그리고 1990년대가 오자마자 탄생한 영화가 ‘늑대와 함께 춤을’이었죠. 그 외에도 미친 듯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스크린과 안방 비디오에서 삶에 힘든 미국인들을 위로했습니다. 가뜩이나 야외 활동보다는 집에 있는 걸 좋아했던 제게 이 시절 영화는 정말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1980년대를 넘어 1990년대 초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소위 말하는 ‘비디오 키드’로 자랐습니다.

최근에는 왠지 확 당기는 영화들이 잘 눈에 띄지 않네요. 그 시절에는 평균 하루 1~2편의 비디오를 돌렸어야 맘이 편안했는데 나이가 들었는지 아니면 그때처럼 재미있는 영화가 없어서인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그 시절(1980년 ~ 1995년까지) 영화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자니 너무 아쉬워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분에게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처음으로 소개해 드릴 영화는 가장 최근작(?)인 <엠파이어 레코드>입니다. 1990년대에는 특히 청춘 영화가 인기를 끌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사라진 ‘하이틴 스타’라는 단어가 있었을 정도니까요. 

1995년 개봉한 이 영화 역시 다양한 청춘 군상들이 등장해 좌충우돌 이야기를 펼칩니다. 1959년 설립한 ‘엠파이어 레코드’라는 레코드 판매점(요즘 친구들은 레코드 판매점을 아예 모를 수도 있겠네요)이 대형 체인 기업에 인수될 위기에 봉착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주 내용입니다. 영화는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엠파이어 레코드, 한 장소에서만 진행합니다. 이렇게 큰 레코드숍이 있었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네요. 흑흑흑...

이 엠파이어 레코드에는 전날 매출을 들고 카지노로 향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긴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손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친구부터 하버드 입학을 앞둔 모범생까지 다양한 성격과 외모의 친구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10대들을 미치게 했던 음악들을 배경으로 당시 젊음들을 투영해 겉모습에서 드러나지 않는 고민과 아픔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에게는 뭔가 영화 자체가 정신없고 캐릭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는 있지만, 90년대 10대들은 원래 그랬습니다. 지금 10대나 20대보다 더 정신없이 살았어요. 그랬어도 사회에서 존재감이 희미했죠. 

독재에 저항했던 선배들에 비해 편안하게 생활하면서도 어딘가 빚을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세대니까요. 그런 것들이 표출된 것이 X세대, 오렌지족이라는 단어로 대표하는 문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금은 헐리우드 톱 자리에 올라온 배우들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지의 제왕에 출연한 ‘리브 타일러’, ‘프리즌 브레이크’나 ‘멘탈 리스트’에서 봤던 ‘로빈 터니’, 그리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넘어 <주디> 까지 넓은 연기 폭을 보여주는 ‘르네 젤위거’의 젊은 시절 연기를 볼 수(무려 누드 에이프런 연기까지) 있습니다. <브리짓 손스>의 일기가 나오기 6년 전 영화이니 얼마나 풋풋한 모습들을 보여줄지 기대되지 않으세요? 남자배우 중에서는 <CSI : 마이애미>의 ‘로리 코크레인’의 반항아 기질을 보시면 무척 반가우실 거에요.

감독 ‘앨런 모일’의 대표작은 사실 이 영화가 아닌 1990년에 발표한 <볼륨을 높여라>입니다. <볼륨을 높여라>는 누가 뭐라 해도 제 인생 1티어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할 이야기도 많지만 그건 다음에 이 영화를 소개할 때 하도록 할게요. 아무튼 ‘볼륨을 높여라’를 보기 전 ‘엠파이어 레코드’를 먼저 보시길 권장합니다. 이유는 두 영화를 다 보신 분은 아실 거에요.

아무튼 오래간만에 25년도 더 지난 청춘 영화 한 편 보시면서 그시대 청춘들의 고뇌와 지금 우리의 고뇌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