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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영화와 음악

보수와 진보 모두를 돌려깐 영화 '더 헌트'

일단 2012년작 매즈 니컬슨 주연의 '더 헌트(Jagren, The Hunt)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그렇게 알고 오신 분은 '아이고 잘 못 들어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냥 끝까지 보세요. 이것도 나름 읽어볼 만합니다. ㅋㅋㅋ

잘 못 들어왔다 생각하고 그냥 가시면 쏘지 말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그냥 그런 킬링타임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뭔가 껄쩍찌근한부분들이 나오더라고요. 미국 정치와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 한 저도 몇 가지는 '이건 분명 풍자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냥감이 되고 있는 사람들의 출신이 미국 와이오밍·미시시피·플로리다주 같은 곳이더라고요.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면서 알게 된 건데 이 지역이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인 보수 지역이더라고요. 트럼프 승리지역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뭔가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을 잡아다가 사냥하는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뒤져 봤더니, 역시 이 영화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더라고요.

트럼프가 왜 이 영화를 깐거지?

트럼프는 2019년 8월 9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진보적 할리우드는 엄청난 분노와 증오에 찬 최고 수준의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적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화살이 바로 영화 '더 헌트'를 향한 것이더군요. 그런데 살짝 이상했습니다.

"진보들이 죄 없는 보수들을 데려다가 무참하게 사냥하는 영화, 거기다 결말은 보수가 승리하는 내용인데 왜 트럼프가 싫어할까?"

내가 모르는 내막이 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해석이 있는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다 유튜버 '어퍼컷Tube'님의 해설을 보고 나서 무릎을 부서져라 쳤습니다. 이 영화 정말 대박이더군요. 그래서 제 생각을 조금 섞어봤습니다.

어퍼컷Tube의 영화 분석은 무지한 제게 광명과 같은 깨달음을 안겨줬습니다. 이 글과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영화를 보면 도망자들의 출신과 상관없이 이들의 행동만으로도 보수주의자들이라는 판단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쏘려고 하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게 합법적인 권리"라고 떠들면서 자신은 다수의 총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녀석이나, 난민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친구사 나오죠. 거기다 이 친구들은 음모론을 좋아합니다. 밖에서 보이는 미국 보수의 전형적인 특징들이죠.

공격자들은 반대로 총기를 싫어하고, 기후 변화는 사실이라면서 도망자를 유린하고, 도망자 중에 유색인종을 포함시키자 인종차별이라고 떠듭니다. 거기다 쓸데없이 세계정세에 관심이 많죠. 여자이기 때문에 봐줘야 한다는 말에도 '그럴 필요 없다'면서 쿨하게 죽음을 택하죠. 여기까지 보면 전형적인 진보주의 성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하나같이 진지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톡 까놓고 이야기 하면 그냥 '재수' 없어요. 믿도 끝도 없이 '난 정직하고 내 생각이 옳다'라고 우기는 친구들 있잖아요? 그런 쓰레기만 모아 놨어요.

돈 많은 지배계층의 공격자(진보)와 평범한 일반인인 도망자(보수)의 대결. 거기다 공격자는 가식인 모습과 멍청함까지 거침없이 보입니다. 솔직히 이거 감독이 '우니나라 진보주의 넷 워리어'를 보고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분명히 진보주의자를 까면서 보수주의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풍자영화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외딴 곳에 남겨졌을 때 주변에 총기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대체 뭐 때문에 이 영화를 트럼프가 비판하고 보수주의자들이 싫어하는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진보주의자 뿐만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심하게 돌려깍기를 시전합니다. 영화는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바보 새끼들'이라고 외치고 있거든요.

영화의 메인 주제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공격자는 '동물농장'을 이야기하고 도망자는 각색한 '토끼와 거북이'를 이야기하죠. 어퍼컷Tube에서는 공격자의 리더 아테나에 대해 "동물농장을 읽어보지 않았다"라고 했는데요. 제 생각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에 "반란 이후에도 설탕이 있을까?"라는 동물농장의 대사가 나오는 걸 보면 이들이 동물농장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가설은 조금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동물농장은 독재자를 피해 혁명을 일으키고 성공했지만 또 다른 독재, 어쩌면 더 심각한 독재에 직면해 버린 '한국의 1960년대'를 연상하게 하거든요.

그러니까 공격자의 수장인 아테네가 주인공 크리스털을 '스노볼'이라고 부르는 것은 올바른 비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노볼은 혁명가 이긴 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닌 것 같거든요. 동물농장에 대한 해석들을 보면 스노볼이 스탈린에게 쫓겨난 '레프 트로츠키'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 크리스털도 다른 도망자들과 같은 분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거든요. 

전 오히려 크리스털이 아테네에게 "스노볼은 너 같은데?"라고 하는 것이 스노볼에 대한 이해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노우볼은 폭력 노선에 반대하지 않나요? 악당 퇴치라는 이유로 영화 속 폭력 사태를 기획하고 이끌어 가는 것은 아테네인데 스노우볼이라니요. 이건 정말 보수, 진보의 이분적 논법입니다. 크리스털의 논법으로 보면 '박정희'도 스노볼이 될 수 있는거죠.

솔직히 스노우볼상은 아니지.

다만 어퍼컷Tube가 이 영화를 "진보를 패션화 하는 사람들, 지지하는 정책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자신과 다르다면 공격하는 세력, 남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을 비판하는 영화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크리스털은 비록 보수가 우세인 지역 출신이지만 진보와 보수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을 중도라고 한다고요?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이상적인 사회구성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영화 속 인물의 비율로 미국의 현재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정확하게 출연자의 수를 세어보진 못 했지만 공격자와 도망자, 그리고 크리스털로 대표되는 멍청한 보수와 멍청한 진보,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구성원의 비율이 현재 미국의 상황이라고 비꼰 거죠. 그 비례는 우리나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은 '거북이'가 아닌 '토끼'가 되고 싶어 하는 바보들이 모여 서로 박 터지게 싸우고 있습니다. 저도 그 바보 중 하나일테죠. 진정 누가 토끼인 걸까요?

토끼는 언제나 이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