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을까"
이용철 평론가는 이 한 줄의 평론으로 영화계 내외에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어찌 보면 박성광이 받아야 할 비난까지 덤터기를 썼다고 봐도 될 정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런 말 할 만했고 들을 만한 영화였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팔로우도 하고 좋아하는 '황석희' 번역가는 "조던 필도 코미디언인데요"라면서 박성광을 옹호했다. 저런 반응은 이용철 평론가의 한 줄 평을 '개그맨이 무슨 영화를 찍는다고...'라고 느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영화 평론가라는 사람이 조던 필 출신을 몰랐을까? 조던 필은 둘째치고 '찰리 채플린'은? '기타노 다케시'는? 국내에도 이미 예능 PD 출신의 '신원호 PD'나 '김석윤 감독'이 드라마와 영화씬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개그맨이 영화를 찍었다고 폄하했다? 그런 거로 보이지 않는다.
난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그냥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 이용철 평론가는 개그맨 출신 감독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그냥 박성광이라는 인물 자체에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용철 평론가도 직접 '평론가가 개그맨을 하대할 이유가 없다'라고 항변했다.
박성광은 '영구와 땡칠이' 만드느냐는 말을 듣고 상처받았다고 했다. 이용철 평론가의 평론을 듣고도 괴로워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투자한 사람들과 열심히 연기해준 배우들, 고생한 스테프, 영화 팬들을 생각하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다. 요즘 영화 제작비가 현실감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긴 하지만 40억도 적은 돈은 아니다. 인생은 실전이라며~
만약 내가 국문학과 출신이라고 치자. 그리고 웹툰을 몇 작품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이제 출판사의 투자를 받아서 2~3권짜리 장편 소설을 썼다. 그런데 막상 서점에 깔린 소설이 백일장에서 입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졸작이라면? 나 역시 "소설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을까"라는 비판을 받았을 거다. 그럼 그때 '웹툰 작가를 무시한 평론이다'라고 할 건가? 그걸 그냥 "넌 아직 소설을 쓸 능력은 안 돼"라고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걸까?
박성광의 '웅남이'는 CGV가 배급까지 맡을만한 장편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개그맨 출신이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찍은 코미디 영화라는 것 하나로 이슈몰이를 더 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박성광이 아닌 일반 감독의 초봉작이 저 정도라면 그냥 조용히 묻혔을 거다.
'웅남이'를 제작한 '영화사김치'가 만든 영화는 두 개 더 있다. 이성재 감독의 '비밥바룰라', 김형협 감독의 '아빠는 딸'이다. 비밥바룰라는 박인환, 신구, 임현식, 김인권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다. 아빠는 딸도 윤제문, 정소민, 이일화 같은 좋은 배우들이 연기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두 작품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박성광은 개그맨 출신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았고 그 혜택을 결과로 보여주지 못 했기 때문에 더 큰 실망을 안겼다.
가만히 계시는 분을 소환해서 죄송하지만, 심형래가 새로운 영화를 찍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영화 팬들이 질겁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영화 팬들은 심형래가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욕을 하는 게 아니다. 연출력이 형편없기 때문이지.
요건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인어공주 사례를 봤을 때 웅남이가 아니라 '웅녀'로 캐릭터를 바꾸고 그 웅녀가 윤나라와 러브러브 하는 장면들을 넣었다면 다른 의미에서 더 이슈가 되고 더 단단한 쉴드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블로그 > 영화와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Case of You (0) | 2024.07.03 |
---|---|
'스즈메의 문단속', 나만 별로였나? (0) | 2023.03.27 |
빈속으로 봐도 된다. '아메리칸 셰프' (0) | 2021.06.02 |
그시절 그영화 - 엠파이어 레코드(Empire Records, 1995) (0) | 2021.04.18 |
보수와 진보 모두를 돌려깐 영화 '더 헌트' (1) | 2021.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