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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끄적끄적

리얼미터가 조작사기극을 저질렀다?

우리나라 기자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자료를 끝까지 제대로 보지 않고 기사를 작성한다는 겁니다. 아니면 자료 중에서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작성한다던가 말이죠.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도 심상치 않고요. 국민의힘의 지지도가 민주당을 추월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부 진보 관련 매체에서 설문조사가 조작이고 사기라고 주장하기에 나섰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래 기사입니다. 

 

 

[서울의소리] (사설) 리얼미터 국정부정평가 61%, 윤석열 대선1위 ,모두 조작사기극이었다.

지난 3일 YTN은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범법피의자 윤석열이 무려 30.4%로 1위를 차지한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각각 20.3%와 1

www.amn.kr

비록 사설이긴 하지만 상당히 사회적 명망 있는 분까지 이 기사에 휘둘리는 모습이 보여 안타깝습니다. 이 기사는 제가 보기에 엉터리입니다. 아마도 아래 자료를 보고 작성한 것 같습니다.

www.realmeter.net/wp-content/uploads/2021/01/주간통계표20년12월5주최종.pdf

[서울의 소리]의 사설은 리얼미터의 자료 3페이지만 보고 작성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군요.

비교적 민주당에 우호적인 여성의 비율이 조사인수의 34%로 남성의 절반수준인데다, 젊은 층의 조사인수는 목표할당보다 평균 25% 대폭 줄어든 반면, 50대 이상은 목표할당보다 평균 24% 대폭 늘어나면서, 무려 30%가 넘는 엄청난 성별오차와 24%의 연령별 오차까지 중첩되면서, 범법피의자 윤석열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대국민 사기극이 벌어졌다할 것입니다.

얼핏 수치만 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럼 그렇지. 사기꾼 자식들'이라고 욕 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에 있는 수치는 리얼미터 자료에 나와있는 그대로 입니다. 그러니까 숫자 만으로는 허위가 아니죠.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 리얼미터의 자료에는 '가중값 배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응답에 응하는 사람들의 수가 전체적으로 골고루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수에 맞게 비율을 맞춘 겁니다. 자료를 보면 조사자 중 남성은 1279명, 여성이 724명입니다. 리얼미터는 남성 1279명의 답변에 가중값 0.78을 곱했고 여성 724의 답변에 1.39를 곱했습니다. 가중값을 곱했을 때 남자의 사례수는 992로 줄고 여자는 1008로 늘어납니다. 오히려 여성의 사례수가 더 많네요?

위 사설에서는 이 부분을 상큼하게 빼먹고 사기 운운한 겁니다. 물론 설문조사 자료에는 연령대, 권역별 사례수에도 가중값이 비교적 공정하게 배정돼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자료의 3페이지를 넘겨서 4페이지부터 봅시다. 4페이지부터는 각 질문에 대한 답변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나와 있습니다. 사설에서 주장하는 '비교적 민주당에 우호적인 여성' 중 무려 25.9%가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는 30.9% 밖에 안 되네요. 5% 차이입니다. 남성은 어떨까요? 민주당 28.5%의 지지도를 보였고, 국민의힘은 35.0%의 지지도를 보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 차이는 3%가 안 됩니다. 이 정도 수치를 가지고 '비교적 민주당에 우호적인 여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물론 범여권으로 범위를 늘리면 차이는 조금 더 커집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의 지지도를 합해 보겠습니다. 남성의 경우 39.2%, 여성은 45.7%입니다. 6.5% 정도 차이가 나네요. '비교적 범여권에 우호적인 여성 유권자' 정도 되려나요?

자료 찾아보시기 귀찮으실 테니 캡처해서 보여드릴게요.

리얼미터 주간집계: 2020년 12월 5주차(28~31일) 자료 중 지역, 성별 정당 지지도

사설에는 연령대에 대해서도 핏대를 올리셨더군요. 정말 젊은 층의 여권 지지율이 야권에 비해 월등히 높을까요? 아래 표를 한 번 보세요. 자료의 5페이지입니다.

리얼미터 주간집계: 2020년 12월 5주차(28~31일) 자료 중 연령별 정당 지지도

보이세요? 40대를 제외하고는 30대 이하 젊은 층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젊은 층 조사를 더 많이 한다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그다지 많이 올라가지 않는다니까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인기도를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기사에는 '윤석열이 아닌 동네 똥개가 나와도 압도적으로 1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말입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하셨네요. 그런데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는 YTN에서 의뢰한 자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서 리얼미터에 의뢰한 [월간 정례 2020년 12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보겠습니다. 이 자료는 아래 링크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으니 천천히 읽어보세요.

www.realmeter.net/wp-content/uploads/2020/12/리얼미터보도통계표_2020년12월정례월간차기대선주자선호도최종_g44-1.pdf

제 생각에 이 조사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5페이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표부터 한 번 보겠습니다.

리얼미터 [월간정례 2020년 12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중

윤석열 검찰총장의 인기는 남자, 여자와 상관없이 고르게 23%를 넘는 인기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연령별로 봐도 18~29세만 이낙연 대표가 1.3% 정도 앞서고 나머지 연령층에서는 전부 다 윤 총장이 앞섭니다. 아! 40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인기가 높군요. 아무튼 그러니까 결론은 여성의 비율을 지금보다 높이고 젊은 층의 사례수를 지금보다 많이 책정한다 해도 여전히 윤 총장의 선호도가 높을 것이라는 겁니다. 조사 결과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것 대충 짐작이 가시나요?

이념성향이 진보라고 답한 사람 중 무려 10.3%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보수 중에서도 이낙연 대표나 이재명 경기지사를 지지하는 사람이 없지 않네요. 이건 무엇을 시사하는 걸까요? 저는 정치 평론가는 아니니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설문조사의 사례수를 꼬투리 잡아서 사기니 조작이니 떠들 시간에 어떤 것이 윤 총장이 대선 지지도를 높이고 민주당의 인기를 떨어 뜨리는지 보이는 수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분석하는 것이 진보 쪽에는 더욱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하는 조심스러운 건의는 해 봅니다. 

그리고 제발, 자료는 제대로 분석해서 기사 써 주세요. 짜증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