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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끄적끄적

생일 케이크의 비애

급격한 기술 발전에 지친 인류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지로그'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서로 상반되는 뜻을 가진 두 개의 개념을 결합한 용어로 IT 시대의 발달로 점점 차가워지는 시대상에서 과거의 따스함을 조금이라도 찾아보고자 하는 회귀의 몸무림이 아니었을까?

2020년에는 34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LP, 즉 바이널 레코드의 판매량이 CD 판매량을 추월하는 현상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2020년 LP 판매량이 그 전 해에 비해 무려 73.1%나 늘어났다. 특히 20, 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LP의 인기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백예린 같은 젊은 아티스트의 LP 판매량이 많은 판매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늠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몇이나 경험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아직 월급봉투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노란색 종이봉투에 경리직원이 손글씨로 월급명세를 적었고(그때는 펜글씨 자격증도 있을 정도로 상업고등학교 출신은 글씨가 예뻐야 했다) 그 안에 만 원짜리, 천 원짜리, 그리고 동전까지 꼼꼼하게 넣었다. 50만 원 정도 되는 얇은 월급봉투였지만 그 두께를 느끼고 싶어 일부러 가방에 넣지 않고 재킷 안 주머니에 넣고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언젠가부터 봉투가 사라지고 통장에 숫자로 월급이 찍히기 시작했다. 이제는 언제 얼마의 월급이 들어오는지도 잘 모른다. 통장 잔고를 은행에서 찍어보던 시대도 지났다. 그냥 스마트폰 몇 번 툭툭 치면 내 재산이 확인된다.

쓸데없는 사설이 길었는데, 최근 드는 생각은 많은 사람이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한다고 하지만 그냥 자기 과시식 보여주기 아닐까 싶다. LP가 많이 팔린다고는 하지만 전시용이 아닌 감상용으로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하긴 직접 손에 먼지를 묻혀가며 LP판을 고르고 골라서 구입하는 것보단 인터넷으로 주문한 후 장에 처 박아 놓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테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편리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의미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최근 회사에서 생일 케이크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우리 회사는 근처 동네 제과점과 계약을 맺어 직원 생일에 케이크를 받아 선물해왔다. 동네 제과점의 장점은 프랜차이즈 케이크와 달리 좀 더 개성이 강하다. 즉 호불호가 강하다는 뜻이다. 결국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케이크가 맛이 없다', '혼자 사는 데 케이크 하나는 너무 많다' 등의 불만이 터졌다. 실물 케이크가 아닌 상품권으로 달라는 의견이 많아 결국 원하는 직원에 한해 상품권을 전달하기로 했다.

사실 상품권으로 처리하면 회사에서도 편리하다. 하지만 굳이 불편하게 실물 케이크를 배달받아 직원에게 전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의 손에서 사람의 손으로 전달하며 느껴지는 체온과 감정, 그리고 그 케이크를 본 다른 이들이 '아~ 저 사람 생일이구나'하면서 마음 속이라도 축하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혼자 사는 친구들을 위해서는 팀에서 케이크를 받아 함께 축하해주며 나눠 먹는 이벤트를 가져도 좋았을 거다. 그깟 2만 원 정도 되는 상품권을 받는 것보다 함께 축하해 주는 동료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축하를 받는 것이 더 보람 있게 생일을 맞이하는 일이 아닐까? 생일에 상품권을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냥 생일 있는 달에 생일 수당이라고 해서 2만 원 정도 월급에 더 넣어주는 것과 다를게 있을까?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팀원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모 커뮤니티에서 366명의 불특정 다수로 익명 투표를 하였을 때 여론이 생일을 챙겨 주는 것을 불편해하는 여론이 많은데, 우리 회사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를까요. 1위는 소속 팀이나 친한 동료 선에서 알아서 축하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가장 많고 인사총무 또는 조직문화에서  직접 축하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당시에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생일에 케이크를 주는 것은 단순히 선물을 주는 의미가 아니다. '대표이사 한 사람이 아닌 회사라는 조직이 너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혼자만 알 수 있게 상품권 같은 것을 주지 않고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현물로 주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걸 잘 활용하게 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라고. 물론 입을 삐죽이는 것으로 반격당했지만.

직장에서 생일 축하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지금이 20세기도 아니고 꼰대 마인드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진정한 매력은 불편함에 있다. 불편하지만 하나하나 손으로 조작하고 그로 인해 0과 1이 아닌 이어진 선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매력 말이다. 편안함만 계속 찾다 보면 언젠가 인간은 양철 나무꾼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