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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영화와 음악

레디 플레이어 원


도대체 얼마나 블로그에 안 온 거야. 로그인 계정이 휴면 계정이라니. ㅠㅠ.

그동안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어찌 됐든 정리를 하나도 안 했다. 반성해야지. 틈틈히 정리하자.

아무튼 이 영화. 지린다. 오진다. 8~90년대 덕후들에게는 정말 기립박수를 치게 만드는 영화다.

A-ha의 Take on me이나 Van Halen의 Jump가 배경음악으로 쓰였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 백 투 더 퓨처의 드로이안이나 건담, 메카 고지라가 나와서도 아니다. 영화 샤이닝의 몇 장면이 그대로 나와서 오싹했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해보지도 못한 그 시절 아타리 게임들에 감정이입이 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가득하다. 

감독이 스필버그라 따뜻한 '가족영화가 되겠지'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감상으로 평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그리고 있던 미래상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에 더욱 감명받았을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심해진 빈부격차. 트레일러를 포개놓은 듯한 빈민촌의 모습. 가상현실에 빠져 사는 인간들. 그러한 것들이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다.

주인공 역시 이질감이 없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그저 게임을 잘하는 덕후일 뿐. 대단한 능력을 갖춘 영웅이 아니다. 일본 친구 하나가 무술을 좀 배운 것 같지만 현실에선 깔끔하게 발린다. 게이머 치고 인성까지 좋은 것이 조금 이질감이 느껴질 뿐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이 조금 억지스러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 세상을 움직이는 위인들도 엄청난 덕후들이 아니던가. 

이 영화에는 새로 시작한 스타워즈의 주인공 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먼치킨이 없다. 제대로 전투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이 사막에서 쓰레기나 줍던 양반이 황제의 호위병을 무 썰듯 썰어버리고 어느 비행사보다 훌륭한 비행 솜씨를 보여주는 그런 이질감이 없단 말이다. 그런 점이 특히 맘에 든다. 피지컬이 현질을 이길 수도 있지만 그건 엄청난 고인 물이 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스필버그 하면 떠오르는 존 윌리엄스가 아닌 엘런 실버스트리가 음악을 맡은 것은 약간 의아했을 뿐 충분히 훌륭했다. 영화 분위기와 너무 잘 맞는 음악에 오히려 감동했다. 고수는 어느 환경에서도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법이구나. 그런 의미에서 영화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난 원작 책을 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보고 한번 읽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덕후들의 서평을 보고는 맘을 접었다. 스필버그가 원작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 같다. 역시 스필버그라고나 할까? 책을 보며 '이게 뭐야?'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미래의 VR 게임에도 현질은 필수인 모양이다. 다만 랜덤 박스는 없는 것 같다. 양심적인 기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