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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끄적끄적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표에 대한 소회

수능시험날 표정. ⓒ문화체육관광부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대통령 표창장 문제로 인해 조국 전 장관이 고통을 받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당장 교육부에서도 2022학년도 입시부터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당장 발에 불이 떨어졌다.

놀란 것은 진보 교육계의 반발이 거세다는 거다. 내가 진보 교육에 대해 너무 몰랐던 거다. '정시 확대 반대' 기자회견까지 발표하는 등 대통령의 발표에 각을 세우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라고 까지 주문한다. 대전의 한 전교조 선생님도 페이스북을 통해 강한 비판을 쏟아 냈다. 지방 아이들에게 정시 확대는 너무 불리하다고. 전교조 대전지부의 대변인 역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기에 여쭤봤다. 정시 확대로 지방 아이들에게 생기는 불리함이 무엇이냐고. 그분의 답변은 이렇다.

"가정형편상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수능 고득점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 수능도 잘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수능이 선행 학습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대비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서울 주요 대학 중에는 내신으로 진학할 수 있는 '학생부 교과전형'이 아예 없는 곳이 많아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요."

맞는 말이다. 그 말에 내 답변은 이러했다.

"선생님 말씀이 백 번 맞습니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를 위해서라면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원래부터 서울에 못 가는 학생의 비율이 월등히 많지 않나요? 1% 남짓 아이들의 문제로 여론을 형성하는 건 옳지 않아 보입니다. 서울로 가야, 좋은 대학에 가야지 용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뻔한 고정관념이 너무 싫고요. 그래서 대덕의 많은 박사님들이 자녀들을 해외로 보내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전 선생님들이라도 아이들에게 그런 의식을 벗겨 주길 바라는데요."

실제로 내가 아는 몇몇 박사님과 교수님은 이미 자녀를 한국이 아닌 해외 대학으로 보내기 위해 준비 중이시다.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 아닐까? 해외로 유학을 보낼 능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좋은 대학이라도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좋은 대학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적폐로 몰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대학을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다들 우리 부모님들이 보내고 싶어 하는 그 대학을 나왔다. 잘 나가는 사람들도 다 좋은 대학 나오지 않았냐고 반문하면 그 말도 맞다. 당장 NC소프트의 김택진도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이고 카카오의 조수용 대표도 서울대 산업디자인과다. 김범수 NHN 창업자 역시 서울대 산업공학과다. 그래, 이들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들의 성장 과정이 과연 여러분의 아이와 같을까?

위에서 말했듯 서울로 가야지, 좋은 대학에 가야지 용이 될 수 있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너무 싫다. 거기 기를 쓰고 가봐야 그 안에서도 가정 형편, 부모 직업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계층이 나뉘는 경험만 느낄 뿐이다. 거기도 점심에 3000~4000원짜리 학식 먹는 친구들과 10000만 원짜리 전주비빔밥, 12000원짜리 연어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는 아이들이 나뉜다. 서울대학교에 대학 평가를 가셨던 교수님께서 그러한 상황을 직접 목격하시고 마실 줄도 모르시는 소주잔 앞에서 걱정하시던 것이 불과 작년이다. 

수시가 됐든 정시가 됐든 모든 것이 대학입시에 맞춰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을까? 수시 준비가 정시 준비보다 아이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 교수들의 자녀 논문 끼어 넣기나 다양한 위조 같은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스펙을 만들기 위한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아이들 봉사시간 꼼수부터 명백한 불법을 자행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에게 작은 일이지만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스펙을 만들어 주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보내면 떳떳할까? 정의로울까?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을까? 남들이 다 하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나만 바보가 되는 걸까? 그렇게 부모 세대부터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 좋은 대학 나온 사회의 적폐들을 만드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된 거 전두환 정권에 시행했던 과외금지법 다시 시행하고 엄격하고 강력하게 규제했으면 좋겠다. 과외하려면 강사들 학교에 가서 하게 만들고 따로 학원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걸리면 많은 벌금은 물론 징역까지 살게 하는 거야. 학업능력이 떨어져? 그땐 정말 선생님들을 족쳐야지. 대학도 교수 테뉴어에 대한 의견이 많은데 고시 패스했다고 능력과 상관없이 평생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줘야 한다는 것은 시대 흐름상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나 역시 두 아이의 부모로서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다. 매번 아내, 그리고 내 자신과 싸우고 좌절한다. 하지만 좀 더 좋은 대학 졸업장보다는 좀 더 사회에 떳떳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다.

우리나라 GDP는 세계 12위(일본 3위)다. GNI는 33위(일본 27위)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서울대는 THE World University Rankings에서 63위를 차지했다. 도쿄대학은 42위, 홍콩대학은 41위, 칭와대는 22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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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University Rankings

The Times Higher Education World University Rankings 2020 includes almost 1,400 universities across 92 countries, standing as the largest and most diverse university rankings ever to date. The table is based on 13 carefully calibrated performance indic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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