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시리즈 속 가장 유명한 대사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미국영화연구소(AFI)가 2005년에 선정한 100대 미국 영화 명대사에서 90위를 차지한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영화 007 골드핑거에 나온 대사인데 여기선 보드카 마티니가 아니라 그냥 마티니다. 골드핑거는 영화화된 3번째 007이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본드가 셰이크 마티니를 직접 주문한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물론 그전 살인면허에서도 셰이크 보드카 마티니는 등장한다.
한때 칵테일에 빠져서 진 마티니, 보드카 마티니 두 가지 모두 좋아하던 시절이 있다. 보드카 마티니는 확실히 스터(젓는 방법)를 사용하는 것보다 셰이커를 이용해 흔들어서 마시는 것이 내 취향에 맞다. 진 마티니는 드라이한 맛에 마신다지만, 보드카 마티니는 흔들어서 다소 부드럽게 마시는 것이 좋다. 셰이커에 얼음과 술을 담아 흔들면 기포가 생기고, 얼음도 녹으면서 술이 부드러워진다. 어쩌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매력을 뿜어내는 제임스 본드를 잘 표현한 술이 아닐까 싶다.
가끔 나도 멋지게 바에서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면 주문하고 싶지만, 오글거려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대신 혼자 제조해서 마시는 걸 즐겼다. 대니얼 크레이그가 출연했던 '카지노 로열'에서 나온 레시피도 궁금해서 마셔본 적 있다. "고든스 진 세 번, 보드카 한 번, 키나릴레 절반, 얼음 넣고 흔들어서 얇은 레몬 껍질 추가." 베스커라고 이름 붙인 이 버전도 썩 나쁘지 않다. 나는 고든스 대신 비피터를 썼고 키나릴레를 구할 수 없어 릴레 블랑으로 만들어 봤지만 거기서 거기겠지 뭐. 딱 한 번 만들어 보고 다시는 이 레시피로 마티니를 섞어 본 적은 없다. 뭔가 오리저널 같지 않다고 할까?
만화 '바텐더' 13권에도 보드카 마티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 속 주인공 류의 스승인 바텐더 카세 고로가 하루 한정으로 마지막 서비스를 준비한다. 전설적인 바텐더가 받은 첫 주문은 철 모르는 젊은이가 외친 '본드 마티니'. 좀 더 정통 칵테일을 주문해야 하지 않느냐는 다른 단골손님들의 질타 속에서 고로 씨는 "본드 마티니도 아주 맛있죠."라며 주문을 받는. 그게 또 멋지다. "최근에는 고든 진 3, 보드카 1, 키나 릴렛 1/2이라는 레시피도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전 역시 제임스 본드는 초대 숀 코네리인지라.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손님에게 정중하게 의견을 묻는다. 보드카 45ml, 베르무트 15ml를 세이크 하고 레몬 즙을 살짝 낸 후 레몬 필을 글라스 바닥에 깔아 서비스한다. 아~ 이게 정말 보드카 마티니지. 전설이 내는 보드카 마티니는 어떤 느낌일까. 꿀꺽!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문한 보드카 마티니. 제임스 본드는 그 칵테일을 첫사랑 같은 여자 '베스커'의 이름을 붙인다. 그 이유가 멋지다. 플러팅도 이쯤 되면 신의 경지다. 제임스 본드는 중2병의 화신이 아닐까?
“Because you’ve once tasted it, that’s all you want to drink.”
"한 번 맛보면 그것만 찾게 마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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