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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기자 명함 내세운

인간의 피조물에서 친구로 거듭나는 로봇

1970~8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은 로봇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최근에도 ‘또봇’, ‘터닝메카드’ 등 유아를 위한 로봇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아빠들의 어린 시절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 당시 어린이들은 ‘짱가’, ‘마징가 Z’, 메칸더 V 같은 일본산 로봇부터 국산 로봇 ‘태권 V’까지 사람을 닮은 거대 기계에 매료돼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이들을 닮은 장난감이 즐비했고 공책, 필통 등 필기구는 온통 로봇 천지였다. 재미있는 건 로봇 파일럿보다 로봇을 만든 과학자들의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래희망 중 로봇 공학자가 많은 수를 차지했다. 애니메이션 속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연구하는 남 박사, 김 박사들은 항상 안경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동경의 대상이 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다시 주목받는 로봇공학

로봇 장난감을 들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어느새 중년이 됐다. 그중에는 정말 로봇 공학자가 된 이도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 로봇에 열광하던 시대에서 30~40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그리고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이슈 함께 다시금 로봇에 관심을 보인다. 외계의 침략에서 지구를 지켜주던 로봇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TV 밖으로 뛰어나온 것이다. 사실 요즘은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뭔가를 하면 무조건 ‘로봇’이란 단어를 붙인다. 덕분에 로봇은 인공지능 기술과 융합되어 4차 산업의 핵심 기술로 주목하고 있다.

‘로봇(Robot)’이란 단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Carel Čapek)에 의해 탄생했다. 그가 1920년에 발표한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 Rossum's Universal Robot)>(1920)에 처음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체코어 robota가 어원인데 ‘노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 로봇은 원래 일을 하는 기계다. ‘로섬의 인조인간’에는 인간과 모든 것이 비슷하지만 ‘감정’이 배제된 인조인간이 등장한다. 즉 최초에 구상한 로봇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단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과 비슷하거나 뛰어난 존재일 뿐이었다.

소설 속이 아닌 현실의 로봇은 처음부터 사람의 형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유니메이트(Unimate)사에서 조셉 엥겔버거(Joseph Engelberger) 등에 의해 1950년대에 만들어진 자동차 공장용 산업용 로봇이 최초로 여겨진다. 여기서 말하는 산업용 로봇은 말 그대로 공장 라인 등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로봇을 뜻한다. 대부분 인간의 몸체 전부를 흉내 낸 것이 아닌 팔이나 손을 대신하는 모습이다.

산업용 로봇은 1970년대 급속도로 인기를 얻고 1980년대 기술적 안정화를 거쳐 주요 산업 일군으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단순 반복 기능을 위주로 제작되고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IT 기술들과 접목해 지능형으로 발전돼가는 추세다. 인간형 로봇은 1997년 일본의 혼다에서 계단을 오르는 로봇 P2가 발표하면서 시작한다. 이후 2000년 진정한 인간형 로봇 ‘아시모’가 발표되면서 산업용이 아닌 인간형 로봇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로봇을 숨 쉬게 하는 로봇공학

로봇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기술들이 필요할까? 로봇 개발을 위한 학문을 통틀어 로봇공학(Robotics, 로봇학)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인간형 로봇에 대한 취재를 10년 넘게 진행해온 동아사이언스 전승민 기자는 직접 저술한 ‘휴보이즘’에서 “로봇이란 결국 기계공학 기술이다. 프레임과 각종 액추에이터, 전압관리, 컴퓨터 시스템 관리 등은 기본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하나로 연결해 일괄 조종하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제어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로봇공학은 다양한 유관 분야 지식의 도움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뇌공학이나 인간형 로봇이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해부학 등을 들 수 있다. 인간형 로봇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수 있겠지만 최근 4차 산업의 첨병으로 여겨지는 로봇 대부분은 인간형 로봇 기술에서 파생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4차 산업이 쟁점이 되면서 로봇공학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로봇이 인공지능, IoT 등 4차 산업의 핵심 기술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핵심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동화가 있는 곳에는 어떻게든 로봇공학이 포함된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로봇청소기가 대표적이다. 로봇청소기는 점점 진화해서 빨래 개기, 애완동물 돌보기, 장보기 보조, 육아 등까지 넘보고 있다. 해외의 레스토랑에는 벌써 로봇 웨이터가 등장했다. 의료 산업까지 진출해 사람 대신 메스를 들고 있으며 무인 트랙터, 무인 드론 등의 모습으로 농경 사회까지 진입했다.


의료 산업의 전선에 서는 로봇

의료 분야에서도 로봇의 활약은 약진하고 있다. 병원에서 로봇은 환자의 수술이나 재활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로봇을 주로 의료 로봇이라 부른다.

의료 로봇은 보통 수술 로봇, 수술 시뮬레이터, 재활 로봇, 기타 의료 로봇의 4가지로 크게 나눈다. ‘수술 로봇’은 의사의 수술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수술 연습을 위한 ‘수술 시뮬레이터’도 의료 로봇의 분야에 포함한다. 환자의 재활 치료를 위한 ‘재활 로봇’, ‘기타 의료 로봇’은 진단, 간호, 안내, 원격 진료 등의 일을 맡고 있다.

1992년 IBM에서 최초의 의료용 로봇 로보닥(Robodoc)을 만든 이래 의료 로봇 시장은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18년 신개발 의료기기 전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수술 로봇 시장은 2021년 9조 6천억원까지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여러 의료 로봇 업체들이 연구개발에 돌입해 있으며 몇몇은 이미 임상 단계에 돌입했다.

과거 산업 현장의 단순 반복 노동에만 사용되면 로봇은 이제 가사도우미부터 의료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 범위가 매우 폭넓어졌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빅데이터, 인공지능, IoT 등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로봇의 활용범위는 더욱 다양해질 전망이다. 또한, 로봇의 형태도 지금껏 봐왔던 산업용 로봇이나 인간형 로봇을 넘어서 나노 로봇, 액체 로봇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1920년대 감정 없이 일만 대신해주는 기계로 비쳤던 로봇이 한 세기를 지나면서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으로 인간의 절친한 친구로 거듭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