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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사진이 있는 풍경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보배섬’ 진도(2013년)

다양한 역사유적과 천혜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의 고장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보배섬’ 진도

겨울에 찾은 운암산방은 초록이 우거진 모습과는 다른 멋을 풍긴다. 남도미술의 혼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진도라 하면 흥겨움 속에 민족의 한이 서려 있는 ‘진도아리랑’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최서남단에 있는 섬, 진도. 진도는 ‘아리랑’을 포함한 다양한 남도의 소리, 그리고 소치를 비롯한 명 화가들을 배출한 한국남화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또한 ‘신비의 바닷길’, ‘세방낙조’ 등의 관광명소를 가지고 있으며 ‘삼별초’, ‘명량대첩’ 관련 역사 유적도 즐비하다.

그렇기에 이 섬에 숨겨진 진기함은 캐내는 사람의 몫이다. 오죽하면 보물이 가득한 섬이라 해서 ‘진도(珍島)’라 불렀겠는가.

진도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진도역사관


“소장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칠천량(현재 경남 거제도 인근 해협)에서의 대승에 도취한 왜군 함대 133척은 조선 수군의 본거지로 몰려들었다. 조선의 국운이 달려있던 긴박한 상황.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로 10배나 넘는 왜선을 완파한다. 1597년 음력 9월 16일 명량대첩 얘기다.

서울에서 452km 떨어진 대한민국 최서남단에 위치한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섬. 전라남도 진도는 명량대첩을 일궈낸 한민족의 강인함이 서려있는 섬이다.

진도는 ‘1년 농사로 3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만큼 농경지가 넓고 농산물이 풍부하다. 섬 주변의 바다에서는 멸치, 꽃새우 등 어류와 미역, 김, 다시마 등의 해조류가 넘쳐난다. 그래서 섬 이름도 ‘보배의 섬’이란 뜻의 ‘진도’라 붙여졌다.

섬 전역에는 다양한 역사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명량해협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용장산성과 남도석성은 고려시대 삼별초의 항몽(抗蒙) 역사가 남겨진 유적지다. 또한 진도에는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씻김굿 등 각종 소리와 멋이 살아 있어 놀이와 굿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진도 아리랑은 지난 2012년 12월 6일 정선 밀양 아리랑과 함께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그 외에도 관매도 등 숨은 비경이 최근 알려지면서 일류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다.

조류 차이로 승리를 거둔 해전지, 울돌목

앞서 언급했듯 진도 하면 명량대첩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해전의 격전지 울돌목은 진도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 중 하나다. 울돌목은 전남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의 바다다. 가장 좁은 곳의 너비가 294m로 밀물과 썰물 때 유속이 보통 바다보다 3배나 빠른 초속 5∼6m다. 이순신 장군은 이 빠른 물살을 지능적으로 이용해 왜군을 격파했던 것이다.

지난 2010년 10월,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이 이 조류 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진도의 농경지와 어우러진 시원한 해변

당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전투상황을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명량대첩 당일 오전 6시 반경 물길이 서북 방향으로 흐르는 밀물로 바뀌었고 이때 이 밀물을 타고 왜의 함대가 전남 해남의 어란진을 출발해 진격해 왔다. 밀물은 10시 10분경 초당 4m로 세차게 흐르다가 차츰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함대가 우수영 앞바다로 출전해 왜의 함대를 만난 때는 오전 11시경으로 추산된다. 이순신의 대장선이 앞서 접전을 펼쳤지만 어마어마한 전함 수의 차이에 겁을 먹은 조선 전함들은 머뭇거리며 400~800m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순신의 필사적인 독려로 조선 전함들이 전투에 가세하던 낮 12시 21분, 드디어 밀물이 흐름을 멈췄고 곧 동남 방향의 썰물로 바뀌었다. 이제 조선 수군들은 해류가 흘러가는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된 반면 왜의 전함들은 역류에 갇히게 됐다. 오후 1시경 유리한 해류의 흐름을 탄 조선 수군은 총통과 화살로 일제히 공격을 퍼부어 왜선 30여 척을 수장시켰다. 오후 2시경 후퇴한 나머지 왜의 함대는 다시는 접근하지 못했다.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울돌목의 조류 차는 신재생에너지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5월 14일 국내 최초로 바닷물의 흐름을 이용한 1,000kW급의 시설을 갖춘 조류발전소가 울돌목 지역에 설립된 것이다. 2005년 4월부터 4년여 동안 총공사비 125억 원이 투입돼 완공된 이 발전소는 500kW급 발전기 2기가 설치되어 있다.

한편, 진도대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군면 벽파리에 가면 충무공 전첩비가 벽파진 언덕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명량대첩을 치르기 직전 16일간 충무공이 머물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비석의 높이는 11m이며 커다란 돌거북 위에 얹혀 명량해협을 지긋이 내려다 보고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진도아리랑의 고장

진도는 소리의 고장이다. 이곳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거나, 장례, 심지어 부부싸움 같은 일상생활에서도 소리를 한다. 남도 최고의 소리 고장인 만큼 각종 상설공연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 자리 잡은 울돌목 해상무대에서는 남도소리여행이 펼쳐지고 있으며 세방낙조 전망대에서는 진도 북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국립남도국악원도 다양한 공연을 준비하고 소리여행을 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남도소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국립남도국악원

진도아리랑을 포함해 한국의 모든 아리랑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아리랑체험관

이런저런 소리가 많지만 진도하면 뭐니 해도 역시 ‘아리랑’이다. 국립남도국악원의 바로 옆에는 진도의 전통소리를 직접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아리랑마을’이 있다. 멋진 한옥 스타일의 정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장구 모양의 체험관은 금세라도 둥둥거리며 흥을 돋울 듯 보인다.

이 체험관에서는 진도아리랑뿐 아니라 각 지역 전통 아리랑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물론 체험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통악기를 연주하거나 아리랑을 따라 부를 수 있는 체험실도 준비되어 있어 남도의 소리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또한 아리랑체험관 정문을 뒤로하고 펼쳐지는 비경도 놓칠 수 없다.

아리랑마을에서는 진도의 또 다른 명물인 홍주 제작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홍주촌’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홍주촌은 진도홍주를 만드는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통한옥체험시설이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등 8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외에는 홍주를 주제로 만들어진 다양한 조소 작품들이 있는 공원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 태풍의 여파 탓에 내부 곳곳이 파손되어 현재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모든 시설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다소 세월이 흘러야 할 것 같다.


고려 항몽 ‘삼별초’의 얼이 서려있는 곳

진도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삼별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배중손 장군의 지휘 아래 승화후(承化侯) 온(溫)을 임금으로 추대하고 항몽 정권을 수립하여 싸웠던 본거지가 바로 진도다. 이 때문에 진도 곳곳에는 삼별초와 관련된 역사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삼별초 항쟁의 주역인 배중손 장군의 위패를 모시는 배중손사당

용장산성에 자리잡고 있는 9.8m 길이 20.5m 규모의 ‘고려항몽 충혼탑’

전남 해남 명량해협을 건너면 진도 벽파진이다. 삼별초는 당시 읍이었던 용장에 들어와 관아와 용장사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였다. 이곳이 국가지정 사적 제126호로 지정된 용장산성이다. 삼별초는 용장사 대웅전과 그 주위를 궁궐 및 총지휘소로 확장 개축하고 선황봉을 중심으로 산상에 용장산성을 쌓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현재 용장산성은 원형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며 용장사와 행궁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외에 기와 조각이나 토기 조각으로 보아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만 몇 군데 남아있다. 이곳에는 9.8m 길이 20.5m 규모의 ‘고려항몽 충혼탑’이 건립되어 삼별초의 얼과 넋을 기리고 있다.

삼별초 관련 또 하나의 유적지인 남도진성(구 남도석성)은 삼별초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향하기 직전까지 마지막 항전을 펼쳤던 곳으로 국가지정 사적 제1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모습은 조선시대에 재축성된 것으로 짐

작되고 있다. 평탄한 대지 위에 축조한 평지성으로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으며 남동마을 대부분을 감싸고 있는 형태다. 망대산 아래 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외부에서 바라보면 S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는 성 안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남서쪽 망대산과 서망산에서는 적을 감시하기에 좋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의 둘레는 610m이고, 높이는 5.3m 내외이다. 이곳의 역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진도군에서는 원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임회면 진도대로에는 삼별초의 지도자 배중손 장군의 위패를 모신 배중손 사당이 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당(堂)이 무너져 방치해 오다, 굴포리 출신 화가 백포 곽남배가 사비와 주민 성금을 모아 현 위치에 5평 규모의 사당과 신당비를 세웠다. 1999년 8월에는 배씨 대종회에서 종친 성금을 모금하여 동상을 건립해 사당 내 우뚝 세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인물의 사당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기저기 파손되어 있어 안타까움만 더해진다.

삼별초 유적지 중 하나인 사적 제127호 남도진성

풍부한 관광자원이 가득한 섬

진도에는 위의 다양한 볼거리 외에도 섬 전체에 걸쳐 무수한 관광자원이 빼곡히 둘러쳐져 있다. 그 중 국가지정명승 제80호로 지정된 운림산방은 진도의 자랑거리다. 배용준, 전도연이 열연을 펼쳤던 영화 ‘스캔들, 남녀상열지사’의 촬영지로도 사용됐던 이곳은 한옥건물과 자연이 멋진 조화를 이뤄 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곳이다. 이곳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했던 화가 소치 허유가 말년에 기거하던 곳으로 한국 남화의 본거지로 꼽힌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 면이 35m 가량 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절로 시 한 수가 읊어지는 비경이다. 운림산방에는 소치기념관이 있어 명화가 가문인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친 남화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소치기념관 옆에는 진도 역사관도 함께 자리 잡고 있어 진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삼별초, 충무공 등에 대한 전시물도 감상할 수 있다.

삼별초 항쟁의 주역인 배중손 장군의 위패를 모시는 배중손사당

소치 허련 일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소치기념관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또 다른 관광지 중 하나는 ‘신비의 바닷길’이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곳은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약 2.8km의 바닷길이 40여m 폭으로 바닥이 드러나 보이는 곳이다. 매달 몇 차례 바닷길이 열리는데 정확한 시간은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홈페이지(http://miraclesea.jindo.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진귀한 현상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리자 진도군에서 ‘바닷길 축제’를 시작했는데 2013년에는 4월 26일 ~ 28까지 3일간 개최된다.

해가 질 시간이 되면 세방낙조 전망대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이곳의 낙조는 중앙기 상대가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대’로 선정했을 정도로 일품이기 때문이다. 여러 섬사이에서 펼쳐지는 일몰의 광경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진도의 맑은 공기와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깨끗이 치유되는 포근함도 얻을 수 있다.

겨울에 찾은 진도는 형형색색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차가우면서도 당당했다. 유배지에서도 왕이 계신 곳을 향해 문안 인사를 하던 선비의 충정이 느껴졌으며 고려, 조선 시대에 걸친 조상의 강한 항쟁정신을 느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서늘한 바닷바람과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도 역사와 전통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멋을 뽐내는 섬, 진도. 진정으로 보배로운 섬이라는 생각이 절로 나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