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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일상 속 끄적끄적

내가 아는 그 KAIST는 어디로 갔는가?



자고 일어나 보니 서남표 KAIST 총장의 거취가 20일경 결정될 것 같다는 기사가 떴다. 서 총장이 처음 KAIST에 부임해 왔을 때,  내심 많은 박수를 쳤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현장의 분위기를 보면 '잘 못한 것은 없을지 몰라도 학교의 분위기가 엉망인 만큼 리더가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일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모든 의혹을 시인하는 꼴이 돼서 서 총장도 가만히 요구에 응해주긴 힘들겠지.


지금의 KAIST는 내가 알던 그 학교가 아닌 것 같다. 공부벌레들로 들끓던 그 학교. 1992년 공고 졸업생으로 자그마한 벤처기업에 도면 그림쟁이로 일하던 시절. 말로만 듣던 KAIST 기계공학과 NOVIC팀(그 팀이 확실한가 가물거리지만) 형님과 일을 한 적이 있다. 일계 지방 공고생이었던 내게 KAIST 박사과정생은 태권V 만큼이나 커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 실력도 있었다. 형님은 정말 바빴다. 회사 일을 도와주는 시간이 아니면 거의 연구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다시피 했다. ‘기숙사에 못 들어간 지 1주일은 된 것 같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던 것 같다.


이후 회사가 KAIST 내로 이전하고 난 후 KAIST생들은 더욱 더 괴물 같아 보였다. 꽃 피는 봄에도 KAIST 교정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좀비영화에서 표현하는 거리처럼 한산 그 자체였다. 사장님께 학생들의 동태를 물었더니 강의실, 기숙사, 도서관 중에 있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실제로 당시 KAIST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 같았다. 학생 뿐 아니었다. 교수님들도 엄청 바쁘셨다. 한 교수님의 이름을 어느 행사 포스터에서 보곤 ‘저 교수님이 저런 행사에도 나가시나 봐요’라고 했더니 ‘다른 사람일거다. 그 교수님 바쁘셔서 연구실 밖을 거의 안 나오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험을 무박 2일, 3일씩 치루기도 하고 화장실 앞 복도에 코핏자국이 선명했던 1990년대의 KAIST. 그 때는 인근 충남대 쪽 Bar와 KAIST 쪽 Bar의 분위기조차 확연하게 차이가 났었다. 내게 1990년대 KAIST는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지금 KAIST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쩌다 그 지역 Bar라도 가면 충남대생인지 KAIST생인지 구분이 안가는 친구들이 걸 그룹 이야기를 떠들고 있다. 후배들도 KAIST를 단순 이공계 전문 대학정도로만 인식한다. 오히려 서울대 공대나 포스텍을 더 쳐주는 친구들도 생겼다. KAIST가 포스텍이나 서울대 공대보다 들어가기 쉽다는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다.


학생들에게 너무 경쟁을 시키고 성적을 압박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그 때 선배들은 압박하지 않아도 그렇게 했더랬다. 영어수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KAIST에 흡수된 ICU는 학교 설립 이래 지속적으로 100% 영어수업을 진행했으나 학생들의 불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일부 교수가 영어실력이 부족해 아이들에게 100% 원하는 바를 전달 못하는 것이 걱정이라 한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협의회의 의견? 그냥 웃기다. 협의회에서 총장 퇴임을 일갈하는 이들의 명명을 보면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KAIST에서 소위 가장 잘 나간다는 오준호 교수나 이상엽 교수의 의견도 그들과 같을까 의문이다.


서남표 총장은 취임 후 과학계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겠다며 입시 정책을 개혁했다. 그 결과 입학한 학생들이 지금의 학부생들이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정말 볼품없다. 많은 부분을 깎아서 버려내고 갈아내야 비로써 상품가치가 있는 보석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세공하는 기술자의 능력에 따라 가격차이가 벌어진다. 서 총장에게 한 가지 실망스러움을 느끼는 부분은 원석 선별을 잘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라고 하기에 너무 빨리 깨져버린다. 그리고 쉽게 다른 색에 물이든다. 다이아몬드는 광채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단단해야 한다.


개인적인 바람으론 세트렉아이 박성동 사장이나 아이디스 김영달 사장같은 성공한 KAIST의 1, 2기 학부생 선배들이 학교를 찾았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최순달 현 대덕대학 총장도. 그래서 당시 선배들이 어떻게 지냈으며 어떻게 공부했었는지. 얼마나 어렵게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는지를 전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