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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끄적끄적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 이용수 할머니 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내 책상에 앉아있는 소녀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가슴이 한참 아려온다. 나 자신이 내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할머니 옆에 곽상도가 있고, 극우 유튜버가 있다는 것을 최대한 못 본 척했다. 할머니가 대구분이라는 것도 그냥 뒤로 던졌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어제 페이스북에 올렸던 할머니의 국회의원 출마 경력도, 자유한국당을 먼저 접촉하셨다는 것도 다 차치하고 생각해봤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내 딸에게도 제대로 이해시켜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정치 문제처럼 그러려니 할 수 없었다.

밤에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 다시 읽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자회견을 하신 이유 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셨다는데, 뭔지 모르겠다. 윤미향 당선인에게 드는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는 와 닿는다. 하지만, 기자회견문 전문과 회견 내내 하신 외침들 사이 괴리감에 미칠 것 같다.

이해 안 되는 부분, 생각해볼 내용을 정리해 봤다. 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해 주시면 좋겠다. 정말 그 난리를 치면서도 우리나라 망할 것 같다거나 살기 힘들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어제오늘은 정말 힘들다.

  1. 할머니는 "정신대와 위안부를 왜 합해서 이용하느냐"라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왜 더러운 성노예라는 명칭을 사용하는가"라고 소리쳤다. 유엔의 공식 표현이 '강제 성노예'다. 일본에서 '종군 위안부'라고 부른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라고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말하는 위안부는 전쟁터에서 장병들을 상대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으로 칭한다. 그냥 매춘부다. 할머니가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미국 사람 겁내라고 하는 것'이라는 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소리치셨는데, 영어로 위안부는 'a comfort woman'다. 성노예는 'sex slave'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 차이를 이야기 한 것일텐데. 현존하는 최강 매국 종자 이영훈은 항상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 성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근데 할머니는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라고 하신다.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2. 정의연이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했다고 했다. 30년을 속았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또, "김복동 할머니를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녔다"라면서 이용해 먹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기자회견문에는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뤄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정의연이 문제라는 건지 윤 당선자가 문제라는 건지도 확실치 않다. 30년 성과가 있었지만 윤 당선자가 문제라면 그만 물러나고 다시 제대로 운영하면 될 것인데, 할머니는 이제 와서 "기구를 새롭게 구성하라"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러면서 기자회견 말미에는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3. "수요집회 형식이 아닌 교육 위주의 운동이 필요하다"라고 하셔서 정말 깜짝 놀랐다. 수요집회만큼 정확하고 정기적인 교육 위주의  운동이 어딨는가 말인가? 회견문에 있는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들 간 공동행동"이라는 문구라거나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이라는 건 뭔가 싶다. 전자는 우리나라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후자는 '독립기념관'이 있지 않나. "30년 동안 앉아가지고 얘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라고 하셨는데 내 기억에는 일본 사람들에게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 수요집회라 생각한다. 내 책상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상과 평화비도 같은 의미다. 왜 무턱대고 사죄, 배상만 외치고 있었다고 생각하시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4. "30년을 하고도 하루아침에 배신했다, 배신당한 제가 너무너무 분하다"라고 하셨는데, 그 하루아침이라는 것이 언제고 무슨 일인지 명확하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회의원 출마 때문이신 것 같다. 국회의원에 왜 출마했는지에 대해 본인에게 확인은 해 보셨나 모르겠다. 윤 당선자는 한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합의 문제로 국회 활동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면서 "30년  간 거리에서 외쳤던 그 열정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이는 할머니가 "먼저 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해결하고 싶었습니다"라고 하신 기자회견 전문과 맞다고 생각한다.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갔다고 하시는데 말하시는 사리사욕이 뭔지 모르겠다. 마음대로 국회의원에 나갔다고 하셨는데 윤 당선자야말로 할머니들의 노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5. 정의기억연대의 정식 명칭은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재단이 합쳐진 것이 맞지만 그게 2018년이다. 예전에는 정신대라고 하면 다들 일본군 성노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자신들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고 성토하셨다. 그 사실을 그제 처음 알았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관련 발표나 보도는 없었다. 누군가 옆에서 "정의연은 일본군 성노예가 아닌 정신대를 위한 단체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라는 의혹을 감출 수 없다. 정의연의 명칭이 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할머니가 모르셨을 리 없다. 말씀하신 새롭게 구성해야 할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시기 위해 이야기하신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6. "검찰에서 할 일입니다"라는 말씀에 백 번 공감한다. 모든지 다 깨끗하게 밝혀야 한다. 민주당에서 실드를 쳐야 할 부분은 아니다. 그저 계속 결과를 보자고 이야기하면 된다. 야당에서 국정 조사하고 싶으면 떠들지 말고 제대로 조건 갖춰서 신청하라고 해라. 조건 맞으면 국정조사하면 된다. 야당 쪽도 국정조사할만한 사안 많지 않나? 조건 갖춰놔라. 그럼 된다. 제발 막으려고 하지 마라. 제대로 재판하고 의혹은 풀면 그만이다. 예전처럼 공작에 휘둘릴 세상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직도 그렇다면 너무 허탈하지 않나.
  7. 다시 한번 회견문과 할머니의 발언 녹취록을 읽어보면서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숨어있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몇 가지 곱씹어 본다. "저희가 사죄배상 요구하는 걸 막았잖아요",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습니다", "세계의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모든 여성분들께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 "수요집회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지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할머니들과 수요집회를 비판하고 폄하하던 세력들이 이용수 할머니 편에 서서 손을 들어주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제국의 위안부'를 집필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마저도 이용수 할머니를 두둔하고 나섰다. 이영훈은 "(이용수 할머니의)미래지향적 취지의 발언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할머니도 그들이 그동안 자신들을 공격하던 세력들임을 모르시지 않으실 텐데, 사람은 정말 모르겠다. 너무 무섭다. 

윤 당선자는 할머니께 가서 무조건 죄송하다 사과할 것이 아니라 어떤 부분이 어떤 내용에 역정이 나셨는지, 서운하셨는지 여쭤보고 거기에 대해 답변드리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면서 사죄를 했어야 한다. 무릎꿇고 안아달라고만 했다면 싸대기 맞아도 할 말 없다. 

할 말은 더 많지만....
아래는 어제 할머니가 손에 들고 계셨던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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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위안부였습니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습니다.

해방 이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제 삶의 상처를 대중에게 공개했던 것이 1992년 6월 25일입니다.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제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에 거짓으로 피해를 접수했었습니다.

이후 1992년 6월 29일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 해결과 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간 존재도 몰랐던 우리 피해 할머니들은 각자 겪은 참상과 인권유린을 이야기하며 부둥켜안고 눈물로 아픔을 함께 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3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습니다. 먼저 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말씀을 감히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제 기자회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제가 기대하거나 예상했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후, 참 힘든 세월을 지내왔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이 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부단히 다잡아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들께 부탁 아닌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드러난 문제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동안 이뤄온 시민의식에 기반하여 교정되고 수정되어 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길에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전제하에 향후 제가 생각하는 활동 방향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조속히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 지난번 입장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들 간 공동행동 등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한일 양국을 비롯한 세계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평화와 인권이 유린됐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을 추진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번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를 새롭게 구성하여 조속히 피해 구제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뤄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반한 운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사업의 선정부터 운영 규정, 시민의 참여 방안, 과정의 공유와 결과의 검증까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그동안 이 운동이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해 온 만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활동가, 그리고 국민 여러분 모두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당혹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투쟁 과정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과정이 복잡해질 듯합니다. 제겐 운동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먼저 한 발을 내디뎌 새로운 길을 열어오신 분들께서 밝은 지혜로 시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93세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코로나19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그 길을 닦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함께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한 모두의 한 걸음을 이제 국민들이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