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속 끄적끄적

소녀상 가격 3300만원이 그렇게 비싸 보이나?

최근 윤미향 당선자와 이용수 할머니의 갈등으로 맘이 안 좋다. 가뜩이나 나라가 좌우로 찢어져 빨갱이니 쪽발이니 하면서 으르렁대고 있는데 힘을 합쳐도 모자란 반일 단체마저 내흉을 겪다니. 이거 완전 류성룡도 광해군도 이순신마저 없는 선조시대 같은 모양새다. 

그런 와중에 빡침의 도를 넘게 하는 기사를 발견했다.

 

[단독] "저작권 위반" 태백 소녀상 폐기 요구한 정의연 이사

강원도 태백시 태백문화예술회관 시계탑 앞 보행로에는 가로·세로·높이 각 3m짜리 파란 천막이 서 있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지만, 천막 안에는..

news.chosun.com

혹시 최근 사태 때문에 내가 좀 더 민감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조선일보가 다룬 글이라고 곡해하는 건 아닐까? 하루 정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얼른 블로그를 연다.

이 논란(이라고 하기도 부끄럽다)은 그간 우리가 얼마나 비뚤어진 시선으로 사회운동가들을 쳐다봤는지 증명해 주는 사례인 것 같다. 기사의 논조는 단순하다. '정의연이라는 시민단체에 이사라는 양반이 소녀상 하나에 3300만원이나 받아 처먹었으면서 2600만원 주고 만든 다른 사람의 작품을 저작권 위반이라고 고소했다'라는 거다. 그간 95 정도 만들면서 무려!!!!! 10억원이나 벌어먹었다는 거다.

이쯤 되니 이 기사를 보는 사람들의 비판은 대부분 이렇다. "뭘 그렇게 비싸게 받아 배를 불렸냐", "상징성 있는 작품인데 저작권 그냥 풀면 안 되냐?", "사회단체 이사라는 사람이 욕심이 과하다" 정도다. 과연 그럴까? 개인적인 입장에서 몇 가지 반박하고자 한다.

1. 시민단체 이사는 10억 벌면 안 되나? 

소녀상은 2011년 11월 14일 처음 세워졌다. 그러니까 김서경운성 작가는 지금까지 약 9년의 세월 동안 95개의 소녀상을 만든 거다. 1년에 10개 꼴이다. 그렇게 10억원을 벌었다 치자. 그게 잘 못 된 건가? 요즘 가장 핫한 민경욱 의원은 가장 한 일이 없었다는 20대 국회 회기(2016년~2020년) 동안 무려 11억원이 넘게 재산이 증가했다. 기사를 보면 '정의연 이사 김 작가 부부'라고 강조하는 것 같은데. 사회 운동하는 사람은 돈을 벌면 안 되는 건가? 그런 사람들은 다 기부하고 초가집에서 누더기 입고 살아야 정상이라는 이야기인가 말이다.

난 오히려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도 법정에 서서 판사에게 "심리 중에도 사회 운동가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기 바란다"라거나 "단체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 사회 운동가 여러분. 떳떳하게 번 돈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그대들보다 떳떳하지 못하게 부를 축척한 사람들도 다들 똥똥거리고 잘 살고 있다.

2. 3300만원이 비싼가?

조선일보도 소녀상의 단가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전문가들 추산 원가는 '1000만~2000만원'이었다. 자체 소녀상을 제작해본 조각가 A씨는 "재료 값 1000만원, 기단 등이 700만원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조각가 B씨는 "통주물 방식은 아닌 듯해, 20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세상 어느 미술작품이 원가의 2배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하나? 길거리에서 파는 그림도 원가의 수 배는 받을 거다. 원가 2000만원 들인 작품, 그것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미술품을 3300만원에 공급하는 것이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하는가?

자기가 그린 것도 아니고 대필작가에게 10만원 주고 맡긴 이 그림도 1000~2000만원 받는다고 한다.

조선일보 한 부 가격은 1000원이다. 종이하고 인쇄 원가는 100원이나 할까? 기업들 빨아주면서 광고까지 받아먹는 회사가 신문 팔아 그렇게 많이 남기면 어떡하나? 민족지라고 자부하시니 그냥 무가지로 뿌리시라. 그럼 나도 꼬박꼬박 받아 모아뒀다 폐지로 팔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겠다. 내 기부자 이름을 반드시 '조선일보'라고 똑똑하게 적어드리리.

3. 공익적인 창작물을 재능 기부해야 하나?

이게 가장 짜증 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능기부 참 좋아한다. 열정 페이, 재능기부, 이런 단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그거 모든 아이들이 읽어야 하는 공익적인 창작물이니 저작권 공개해 버리면 어떨까? 책으로 만들려면 종이값, 인쇄비 들 테니 e-book으로 만들어 인터넷에 뿌리자. 어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해외에 우리 문화를 더 많이 알려야 하니 저작권 풀어버리고 누구나 맘대로 카피하고 2차, 3차 저작물 만들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그치? 

조정래 작가님께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재미있게 가르쳐야 하니 '태백산맥' 같은 장편 하나 써달라고 부탁하자. 국민이 성금 좀 모아서 전달하고 아무나 찍어서 돌려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보면 어떨까? 좋은 취지 아닌가? 흔쾌히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새로 쓰기 좀 힘드시면 그냥 이번에 새로 찍으신다는 '태백산맥' 판권 다 포기하시라 하면 어떨까?

제발 좀 공익적인 거라고 무조건 '기부', '공개', 이딴 소리 좀 하지 말자. 3300만원은 내가 봤을 때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소녀상은 그냥 엔터테인먼트적인 예술품이 아니다. 머리에서 바닥까지 모두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에서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걸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베낀다고 다가 아니다. 

친구가 이런 짝퉁 피규어를 사가지고 오면 "어이구, 좋은 제품 싸게 잘 샀네"라고 할건가?

이번에 문제가 된 2600만원짜리 짝퉁 소녀상과 김 작가 부부가 만든 3300만원짜리 소녀상을 비교해 보자. 저런 걸 시에 전시해 놓겠다는 건 그냥 소녀상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모독이다. 그들의 외침과 처절함이 고작 저딴 꼴사나운 짝퉁으로 대변돼야 하는 건가?

어느쪽이 짝퉁인지 이야기 해줘야 할까?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조선일보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어쩌랴. 그들도 그들의 생각이 있는 것을. 하지만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생각을 다시 해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좋겠다. 

내 책상에도 작은 소녀상이 하나 앉아 있다. 아무리 작은 소녀상이라지만 단돈 25000원에 데려 오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하지만 적은 수익금이나마 좋은 곳에 활용한다니 감사히 구매했다. 아무리 작아도 작가들이 직접 감수한 만큼 제대로 만들어져 있다. 뜯긴 머리칼과 어깨 위의 새. 그리고 살짝 뒤꿈치를 든 발 모양, 그리고 할머니 그림자까지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평화비 문구도 당연히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냥 공익적인 작품이니 저작권 공개하자고? 그럼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냥 허접한 짝퉁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소녀상 저작권이 풀리는 순간, 국내에서도 이런 쓰레기가 넘쳐 날 거라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