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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위로 걷다/영화와 음악

'날씨의 아이'를 보고 와서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거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상하리만큼 영화 보는 걸  싫어한다. 어릴 적 포켓몬스터 극장판이나 나와야 한 번씩 극장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고 그 외에는 극장을 가자고 해도, 집에서 영화를 보자고 해도 고개만 저어댄다. 엄마, 아빠, 특히 아빠는 마니아까지는 아니어도 보통 사람보다는 좀 더 영화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왜들 그러는지.

그런데 어쩐 일로 아들내미가 극장을 가자고 한다. '날씨 이야기(?)'라는 영화가 나왔다는 데 '너의 이름은' 감독이 만든 작품이란다. "보고 싶으면 제대로 제목 알아보고 다시 와"라고 호통을 쳤더니 후다닥 스마트폰 검색을 하곤 '날씨의 아이'라고 이야기한다. 원하는 게 뭔지는 확실하게 알고 요구를 해야지. 아무튼 그래서 온 가족이 정말 오랜만에 극장으로 향했다.

아들은 '너의 이름으로'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접했겠지만 내게 '신카이 마코토'라면 무조건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그리고 '언어의 정원'이다. 물론 이후에 '초속 5센티미터'나 '별의 목소리'도 봤고 '너의 이름은'까지 재미있게 감상지만. 하지만 앞에 언급한 두 작품만큼 가슴을 후벼 팠던 영화는 없었다.

'언어의 정원' 속 한 장면. 이런 영상을 만들어 내는데 어떻게 안 좋아하는가 말이다.

소위 '애니메이터를 갈아 넣어 만든' 것 같은 영상은 '신카이 마코토' 작품 최강의 힘이다. 서양 미술계에 램브란트가 있다면 애니메이션계에는 '신카이 마코토'가 있다고 할 만큼 빛을 활용한 연출 역시 일품이다. 이번 '날씨의 아이'에서도 이러한 장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그 비중이 예전보다 조금 적어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 예전과 달리 3D 작업 비중이 조금(?) 높아져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 신카이 마코토 작품에 3D 남발이라니. 

그동안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해피 엔딩을 보기 어려웠다. 내가 좋아한다고 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물론이고 '언어의 정원'도 희망 있는 결말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해피 엔딩으로 보기 그렇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부터는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같은 감독이 맞나 싶은 건 배경의 퀄리티와 독백으로 이어지는 전개 방식, 소년, 소녀가 이끌어 가는 극의 구조 정도다.

'너의 이름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의 작화를 맡았던 '안도 마사시'를 영입했다고 하더니 '날씨의 아이'는 스타일 자체를 '지브리' 스타일로 탈바꿈한 느낌이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스토리와 구성을 보인다. 뭔가 '모노노케 히메'나 '천공의 섬 라퓨타'의 이야기와 묘하게 오버랩되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지브리의 두 작품처럼 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정면을 노려보며 물어 뜯지 않는다. 그저 대도시 속에서 부모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보려고 애 쓴 티만 난다. 최고의 독설이라고 해야 영화 말미에 나온 "세계(라고 쓰고 일본이라고 읽는다)는 원래부터 미쳐있었다" 정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감독 본인이 '초속 5센티미터' DVD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제는 완전히 대중성을 의식한 상업적 애니메이션의 길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먹고살아야지 암. 그런데 어째 일본 내 흥행은 '너의 이름은'보다 한참 못하다고 한다.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색이 너무 많이 가려졌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극장을 나오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려봤다. "난, 지브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신카이 마코토'를 보러 온 거라고"

음악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영화관을 나온 후 바로 OST를 찾아볼 정도로 맘에 들었다. RADIWIPS은 '신카이 마코토'의 영상 및 연출에 잘 어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참, 미츠하와 타키를 다시 보게 된 건 반가웠다. 그런 서비스는 좋아.